시골학교 만족한 손자들 때문에 식당 개업.. 두 달만에 손님 붐빈다

쇠고기 미역국인데, 맛이 일품이다.
아침밥 한상이 3000원이다.

얼마 전 집 근처 새 건물에 밥집이 들어섰다. 간판에 걸린 주 메뉴가 부대찌개인데, 간판 아래 눈에 띠는 글귀가 있다. '아침 국밥 3,000원'.

대학 다닐 때 구내식당에 팔던 콩나물 국밥이 500원이었다. 다른 재료 없이 콩나물에 소금만 넣고 끓인 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서 깍두기와 함께 내놓았다. 솔직히 맛도 없고 배가 부르지도 않았지만, 저렴해서 자주 먹었다.

20년도 넘은 세월을 감안하면 당시 500원이 지금 3000원쯤 될까? 아무튼 3,000원이라는 가격에 20여 년 전 배고픈 고학생 시절의 추억을 되새길 요량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음식에는 솔직히 별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국과 밥을 말아서 주는 국밥이 아니라, 국과 밥을 제대로 차려주는 밥상이다. 쌀밥 한 그릇에 쇠고기 미역국이나 된장국을 날마다 바꿔가며 내놓는다. 반찬으로 김치와 멸치, 어묵조림 등 3찬이 기본이고, 달걀프라이를 요청하면 500원을 추가로 받는다.

처음 방문했을 때 먹은 쇠고기 미역국은 솔직히 아내가 내 생일에 큰마음 먹고 차려준 것보다 맛이 있다. 언제부턴가 밖에서 파는 음식은 그 특유의 자극성 때문에 피하게 되었는데, 이 집 반찬에서는 그런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3000원 국밥은 오전 10까지만 팔고 점심 메뉴는 7~8천원이다. 대신 오후 2시 이후에는 잔치국수를 3,000원에 판다.

시골에 생긴 식당인데, 주인장은 별로 낯이 익지 않고 말씨도 표준말에 가깝다. 몇 차례 방문한 후 사연을 들었더니 주인장(진영자)은 경기도 수원과 안양에서 오래도록 식당을 운영했다.

그런데 지지난해에 딸과 사위가 자녀들을 데리고 하례리로 귀촌하면서, 가족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부모들이 그렇듯 딸과 사위가 멀리 떠난다니 진씨도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딸네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제주도로 날아왔다. 그런데 눈으로 확인한 결과, 모든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

딸과 사위도 시골생활에 만족했고, 시골학교에 다니는 손자들은 학교가 너무 좋다고 난리였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진씨도 생각을 바꿔 제주로 이주했다.

진씨는 제주에 내려온 후 1년 가까이 쉬다가, 다시 하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과 딸이 일을 거들면서, 식당은 가족회사가 되었다. 주인의 정성이 통했는지, 개업한 지 두 달 만에 식당에는 손님들이 붐빈다.

이기철의 시 ‘밥상’은 “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침 상에 수저 놓는 소리는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소리이고, 가까운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소리다. 서귀포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효돈을 지나 하례 입구에 이르면, 수저 소리가 소박하고 아름다운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 길을 지나는 트럭 기사들, 농장으로 향하는 농부들이 이 식당에서 따뜻한 밥으로 새벽허기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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