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2015)

국내에 출시된 라면은 200여 종으로, 연간 36억 개가 판매된다. 1인 소비량으로는 세계 1위(74개)다. 라면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기에 가능한 수치다.

라면과 관련해서는 많은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스프에 첨가된 핵산계 조미료와 나트륨, 면을 튀길 때 사용하는 기름은 고혈압이나 비만 등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라면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먹을 게 도처에 널려있지만, 라면 소비는 줄어들지 않는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2015)는 이 같은 라면의 속성을 풀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라면처럼, 우리 주변은 불순하고 삶은 비애의 연속이다. “세속은 거룩함을 배반하고”, “세속도시의 불순함과 불결함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고종석의 언급과도 상통한다.(고종석, IS전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라면은 연간 200만 명이 굶어죽던 1960년대에 처음 상품화되었고, 외환위기와 대량해고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번창했다. 한국인의 라면사랑은 자본주의가 몰고 온 인간소외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장년을 넘긴 이가 혼자 라면을 먹는다는 것은 초라하고도 쓸쓸한 일이다. 그래도 보릿고개 시절 라면을 통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군대에서 훈련으로 지친 심신을 라면이 녹여줬다. 이런 눈물어린 기억 때문에 라면을 쉽게 외면할 수가 없다.

책이 단지 라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삶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 곧 밥, 돈, 몸, 길, 글 등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라면은 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며, 살아있는 것에 안도하고 생존하기 위해 초라해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해방 전후세대의 비애를 상징한다.

작가의 인생을 관통하는 비애의 출발점엔 아버지가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상해 임시정부에 속했다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선 조국을 저주했다. 그리고 파탄과 광기, 울분과 저주로 억겁의 술을 마셨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아버지가 조국을 저주했듯이, 자신도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다.

어릴 적 아버지를 보낸 저자가 이제 딸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딸과 더불어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살아남은 날들이 모여서 행복을 경험한다. 아이들과 더불어 소소한 일을 경험하는 데서 부모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라면처럼 인생은 불순하고 비루하지만 그래도 소소한 경험이 모여 행복이 만들어진다.

세월호 사태를 바라보는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행복한 여행을 꿈꾸던 아이들 300여명이 온 국민이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차가운 물속에 수장된 사건.

이 사건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부재와 더불어 어른들의 무기력, 더 나아가 부재에 죄절했다. 슬픔과 충격의 깊이는 지금까지도 가늠할 수 없다. 저자는 “물속에서 하얀 손들이 새순처럼 올라와 대통령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우는 꿈을 꾸며 기진맥진했다”며 당시의 고통을 토로한다.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라고 저자의 고백이 와 닿는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독립적이지 않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이 떠오른다. 인간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 동맹이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작가를 버티게 하는 것은 높은 자존감과 자의식이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뿌리치고 작품을 낳기 위해 집필실에 갇혀 홀로 고독해지기를 마다하지 것. 작가는 그 슬픈 숙명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혼자 먹는 라면 한 그릇은 그래서 따뜻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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