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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게 농촌으로 되돌아왔다"[홍창욱의 최남단 생생농업 활력농촌1 ] 프롤로그 - 나는 시골촌놈이다
서귀포신문 | 승인 2017.04.03 23:27

나는 시골촌놈이다. 경남 창원의 변두리, 읍 소재지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멀리 가본 적이 없었고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마산시에 살고 있는 큰엄마가 보고 싶어 탄 버스에서 처음 만난 주남저수지를 보곤 바다인줄 알았다. 그 정도로 나는 시골아이였다.


 많은 시골아이들이 그렇듯 나 또한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느라 도시로 나오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경험보다도 어릴 적 내가 경험한 시골풍경과 농업·농촌의 다양한 자원들이 오히려 내 인생에 큰 자산이자 나침반이 되었다. 더 성장하고 더 부를 축적해야 된다는 세상의 목표의식이나 방향이 아니라, 내가 자란 환경이 나를 편안한 마음으로 이끌고 힘든 시기에 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랄까.

2011년 5월에 열린 허니문올레 행사에서 다짐을 적었다. "아내와 꼭 제주로 다시 돌아오겠다"

지금은 내 마음이 이토록 편안해졌지만 2009년 대도시에서 제주에 이주할 때만 해도 농촌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서울에서 10년이 넘게 도시생활을 하며 때로는 학생, 군인, 직장인,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며 지냈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부족했고 마음은 왠지 모르게 공허했다. 그렇다고 고향 창원에 다시 내려가거나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용기가 없었다. 나와 비슷하게 어려운 서울살이를 하고 있었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내와 결혼하고는 없는 용기가 어떻게 갑자기 생겼는지, 신혼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제주행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말았다. “수미, 우리 제주로 이주하는 건 어때요?” 아마도 그때 아내는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남편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을 것이다. 남편은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인생 세 가지 소원 중 하나가 바로 ‘제주살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 입에서 제주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모니터 화면에 제주 구인 사이트가 자주 등장하게 되자 아내는 내 진심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제주 농촌으로 이주하자거나 귀농·귀촌을 하자고 했다면 아내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라는 고전적 표현을 썼을 것 같고 나 또한 누군가의 제안을 받았다면 ‘내가 농촌 출신이라 잘 아는데... 에이 그거 안 돼요’라며 농촌의 ‘농()’자도 들먹이지 말라고 선을 그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제주 직장을 구한지 6개월 만에 ‘월 200만원 이상이면 생각해 보겠다’는 아내의 가이드라인을 만족시켜 제주시의 한 문화 컨텐츠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2009년 11월 30일에 제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꿈을 꾼 지 1년도 안되어 그 꿈을 이루게 되니 하늘은 핑크빛이었고 공기조차 달았다.

혼자 내려온 지 한 달 만에 만삭의 아내가 내려왔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첫 제주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제주, 특히 제주시가 그렇게 추운지 몰랐다. 분명 살을 에고 목까지 잠기게 하는 서울 새벽의 극한 추위에 비해 덜 했으나, 상온의 기온임에도 뼈마디가 시린 추위, 도시이긴 해도 바람이 참 많이 불었던 것 같다. 내려오고 얼마 되지 않아 손발이 저려 침까지 맞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첫째 뽀뇨는 내가 제주농촌에서 일하는데 큰 용기를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아내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너무 힘들어했고 나는 회사에 다닌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아내는 내게 이참에 회사를 다니지 말고 육아에 전념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나는 바로 수락했다. 생각지도 않게 육아아빠가 된 것이다. 아내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사회활동을 하며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나는 집에서 딸아이를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한참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할 30대 중반의 남자가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땅, 제주에서 아이만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건 너무 야속한 일 아닌가? 내 속상한 마음을 알았는지 제주대학교 최낙진 선배가 영자지 ‘제주위클리’에서 한번 일해보라고 권유해서 면접까지 보았다.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기도 했고 영자지여서 호기심이 났지만 안타깝게도 송정희 대표와 함께 일할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일자리를 권유한 사람이 바로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안은주 국장이다. 안은주 선배는 내가 환경재단에서 일할 때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제주올레의 ‘허니문올레’라는 행사에 초대받아 아내와 함께 참석했고 그 이후 연락을 하며 지냈다.


2011년 당시는 한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도입되어 대중화된 시기로 나는 이 서비스를 제주에서 활용하며 비즈니스의 기회로 삼을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 이야기를 안은주 선배에게 전했는데 마침 1사 1올레 마을인 무릉리 ‘무릉외갓집’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경험도 쌓을 겸 한번 해볼 생각이 없냐는 권유를 받았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제주위클리’냐,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는 ‘무릉외갓집’이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아내가 내게 해답을 주었다.

홍창욱

“육아의 경험을 평생에 언제 한번 해보겠어요. 아이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나는 그렇게 농촌으로 되돌아 왔다. 이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록 영자신문사에 다니는 것에 비해 월급여가 반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와 무릉리로 출퇴근 하던 2011년의 그 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서귀포신문  sgp19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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