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중은 내년이면 14%를 넘는다. 7%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8년 만에 고령사회가 되는 것이다. 2025년엔 20%에 도달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이렇게 빠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OECD 평균의 4배나 된다.

이는 심각한 저출산과 함께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수는 예로부터 큰 축복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장수는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재앙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 노인들의 간병 문제이다.


농경시대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았기 때문에 공동의 경제생활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이나 신체기능의 장애를 가진 노인들에 대한 간병이 가족 구성원들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산업사회 이후 핵가족화는 일반적 현상이 되었고, 여성들의 경제사회적 활동도 크게 늘어났다.

가족 내부의 전통적인 간병이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선진복지국가들은 오래 전에 국가가 연대의 원리를 적용한 간병 제도를 갖추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일을 늦게 시작했고 간병 필요의 급증에 제도적으로 대처하는 데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누구나 늙는다. 예외는 없다. 언젠가는 대학병원 같은 급성기 대형병원에 입원하고 대다수는 신체적 장애를 갖는다. 혼자서는 식사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간병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치매 환자일 수도 있고, 뇌혈관질환이나 암 등의 만성질환으로 인해 신체적 장애가 심한 환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지속적인 치료와 간병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가족들의 정신적 충격과 고통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뇌혈관 질환이나 암 등의 중대 질병으로 급성기 의료기관에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은 후에는 24시간 간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언제나 가족들의 부담이었다. 질책과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정부는 2015년부터 간병에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급성기 대형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전체 대학병원의 65%만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그것도 단지 1개 병동(50병상 규모)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환자 가족들은 하루 10만 원씩을 들여 24시간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든지 아니면 직접 간병을 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월 280만 원이나 드는 간병 비용을 지불하느니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간병을 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간병실직이다.


환자의 상태가 만성기로 접어들면 바로 퇴원해서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요양병원 또는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 집에서 노인 장기요양의 재가급여를 받으면 하루 최대 4시간까지 요양보호사의 간병을 받을 수 있는데, 15%의 본인부담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 외에도 나머지 20시간을 가족 중의 누군가가 돌봐야 하는 큰 부담이 따른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는 간병 비용을 전부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간병의 질이 낮은 것도 문제다. 요양병원 간병인의 절반은 자격증도 없는 사람들이고, 3분의1은 조선족이다. 또 전체 간병인의 3분의1은 경력이 1년 미만이고, 42%는 나이가 60세 이상인 고령자들이다.


24시간 간병에 드는 10만 원은 가족들에게는 큰 부담이지만 간병인들에겐 온갖 위험에 노출된 비정규직의 힘든 노동에 비하면 적은 수입일 뿐이다. 이제 간병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간병을 양질의 전문적 일자리로 제도화하고 우리 사회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병원을 필두로 급성기 대형병원들이 간호 인력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리고 요양병원의 간병은 기존의 사적 방식을 폐기하고 정부의 공적 통제와 관리 체계 내로 편입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정부의 공적 개입과 사회적 연대가 요구된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간병을 국가의 공적 개입으로 해결하며, 가족들에게 간병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다. 대신에 국민들은 국가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연대의 원칙에 따라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기꺼이 더 낸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식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도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연대의 가치에 기반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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