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동산 주민들, 쉰다리로 전통문화와 지역 정체성 찾기 나서

솔동산 주민들이 제주문화와 마을 정체성을 홍보하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쉰다리를 제공하고 있다. 쉰다리를 처음 맛 본 관광객들이 좋은 반응을 나타냈다.
홍콩에서 온 관광객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며, 즐거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시의 구시가지에서 남북으로 길게 지나는 간선도로 주변을 솔동산이라 한다.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쉽게도 그 소나무들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마을이름이 한자화 과정을 거치면서, 송산이란 동 이름을 만들어냈다 .

조선시대 이 일대에는 방어시설인 서귀진성이 있었다. 1702년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의 손을 빌려 남긴 <탐라순력도>에는 서귀진성과 주변 모습이 그림으로 잘 남아있다.

조선시대 방어유적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일대는 빼어난 절경과 시원한 조망권을 가진 구역이다. 솔동산에서 서귀포항과 그 주변의 섬들을 바라보면 마치 풍경화 속 언덕을 연상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천재화가 이중섭은 솔동산에 머물며 아름다운 주변공간을 화폭에 즐겨 담았다.

조선시대 서귀진성이 만들어지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솔동산은 서귀포 구도심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솔동산에 자리 잡은 서귀국민학교가 서귀리에 유일한 국민학교였다. 한 반에 60여 명씩 채워도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골목마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소란스럽던 시절도 옛 이야기가 됐다. 신시가지와 동홍동 등으로 서귀포의 생활권이 확대되고, 아파트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서귀포토박이들의 고향 솔동산은 급격히 위축됐다. 이제는 서귀초등학교도 여느 시골학교처럼 학생 수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을 손 놓고 볼수 만은 없기에 솔동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손발을 걷어 올렸다. 서귀포 토박이 어른신들의 모임인 ‘서남친목회’와 서귀초등학교 47회 동창생(대부분 57년생들이다.)들이 손을 ‘솔동산 어멍쉰다리’라는 모임을 결성한 것.

행사 첫날,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집안별로 당번을 정해 자리를 지킨다. 문재우(가장 왼쪽)·김종현(두번 째 왼쪽)·이라주(가운데 뒷쪽)·송경자(오른쪽)씨 등이 47회 동창생들로 이 일을 함께 기획했다.

이들은 서귀진성 입구에서 지나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전통 발효음료인 ‘쉰다리’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서귀진성의 가치를 알리고, 구도심의 중심지였던 솔동산의 정체성도 찾아보자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침체된 솔동산에 활력을 불어놓고 싶은 기대도 있다.

당장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관광객 50명에서 선착순으로 떡과 쉰다리를 제공한다. 당분간은 시험 운행을 거치고, 5월부터는 봉사 요일을 목·금·토·일요일로 확대할 계획이다.

솔동산 어멍쉰다리가 첫 선을 보인 15일 오후, 주민들이 당번을 서는 서귀진성을 방문했다.

57년생 닭띠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다. 천막에는 쉰다리와 떡 외에도 손님들이 방문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방명록도 준비했고, 서귀진성의 문화적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탐라순력도도 준비했다.

서귀초등학교 47회 졸업생들이 꾸민 일인데, 부모님 연배 어르신들이 더 좋아하는 눈치다. 잘 하는 일이라며, 당부와 격려를 여러 차례 하신다. 떡과 쉰다리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도 돈을 보내왔다. 집안별로 순번을 정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관광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충남 서산에서 온 관광객들은 처음 맛보는 쉰다리 맛에 대해 “시원하고 새콤한 게 별난 맛을 낸다”며 반겼다. 홍콩에서 왔다는 관광객은 영어로 쉰다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타국의 전통음료에 관심을 드러냈다.

일을 함께 기획한 김종현씨는 “과거 솔동산은 제주시 칠성통과 같이 시민들의 중심 공간이었다”며, “이 일을 통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과거 솔동산의 정체성을 잘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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