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4

30년 전 내가 창원의 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마을에서 작은 노래자랑을 했다. 큰 이웃마을처럼 음향시설을 빌리진 못했지만 앞집, 뒷집 아이들이 명절 전날 빈집에 모여 한명씩 노래를 불렀다. 가끔 모여 회관 앞을 청소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엄마 몰래 수영을 하러 물가로 가기도 했다. 그 보다 어릴 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엄마는 봄철에 이웃집 모내기를 품앗이 하느라 바빴고 그 때 나눠준 알사탕은 항상 내 몫이었다. 양쪽에서 못줄을 잡고 십 수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펴가며 하는 모내기, 허리가 아플 때 즈음 중참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논두렁을 따라 걸어온다. 그 때는 농촌에 사람이 많았고 엄마는 젊었으며 내 또래 친구들도 많았다.

요즘 농촌에는 옛날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이 줄었고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농사 지을 땅이 없거나 작았던 사람들은 일치감치 품을 팔러 도시로 떠났고 땅이 있는 사람들도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며 농사일을 줄여갔다. 그 사이 가족 노동력에 의존하던 농업을 빠르게 기계와 화학비료, 농약이 대체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대지에서 생명을 키우는 일이 바로 농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농촌에 사람이 없다보니 몇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다. 농산물을 수확해야 하는 시기에 사람 손을 빌리는 것이 어렵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이 줄어든 대다가 한 지역에서 동일 작물을 주로 재배하다보니 수확시기도 똑같아 이웃의 도움을 얻기가 더 어려워졌다. 처음엔 도시민 지인의 도움을 얻던 것이 점차 외국인 노동자로, 인력회사의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돈이 없어도 땅이 있으면 품앗이로 농사가 가능하던 것이 이제는 노동력을 살 돈이 없으면 농사짓기도 어려워졌다. 가족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소박한 농사를 짓던 것이 30년 전이라면 이제는 농산물 판매를 고민해야 하고 시설투자, 인력고용을 해야 하는 것이 농업이 되었다. 농업의 규모가 커진 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비용이 늘어난 만큼 농산물의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현실은 농업 이익이 줄고 빚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많은 농부들이 겸업을 통해 부수입원을 갖거나 국가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어렵사리 땅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았던 옛날 농촌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우선은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빚 지지 않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농업정책에 타지로 나간 자식들까지 불러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부모의 영농경험과 토지, 지역 사회관계망이 회복되면 젊은 자식은 다음을 노려볼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이 농촌에 유입되는 것 또한 장려할만 하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귀농귀촌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는 이유다. 인구가 늘어 활력이 생기고 세수가 증가해 지출할 예산들이 확보된다. 무엇보다도 농업과 농촌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기에 힘 빠진 농촌을 지킬 수 있고 기존의 농민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준다. 물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이질적인 요소와 기존 사람들의 배타성이 충돌을 일으킬 소지가 있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갈 마음가짐이 있다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농촌휴양과 체험 활성화를 통해 도시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짧은 마을여행, 단기간의 체류, 방문프로그램이 당장의 농촌 이주와 농민소득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지역과 농업의 가치를 높이고 농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지름길이라 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들의 ‘농활’이 도농교류의 좋은 모델이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선 제주의 올레길과 지리산의 둘레길 등 ‘도보길’이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사람이 들어오고 농촌은 작지만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결국 농촌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상품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근본가치인 ‘생명’에 있고 농민의 ‘땀과 잔주름’에 있다.

홍창욱/무릉외갓집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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