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5

 제주에 와서 ‘귤을 사먹는 사람은 제주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이주한 첫 해부터 몸소 느끼게 되었다. 상자도 아니고 포대에 담겨진 귤을 직장 동료, 이웃에게서 건네받았고, 식당 입구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귤을 보면서 내가 정말 귤의 고장에 왔구나 싶었다.   

제주에 온지 2년이 지나 마을에서 농산물 판매 일을 해보니 귤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타이벡 감귤은 내가 도시에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찐한 단맛의 귤이었다. 대정 쪽의 감귤은 비화산회토, 그 중에서도 예로부터 도자기를 굽던 점질토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산미가 다른 지역보다 강해서 귤이 새콤달콤했다.


 설 명절 시즌에 과일을 판매하려다보니 다양한 만감류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레드향은 단맛이 일품이고 알갱이가 알알이 씹히는 맛도 좋았다. 붉은 계열의 표피 또한 식감을 자극했다. 처음에 나무에 달린 형태를 보고 미니단호박처럼 크고 넓적한 모양이 참 특이했다.


 천혜향은 과즙이 풍부한데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자극한다. 매년 천혜향을 주문하는 내 친구는 값은 비싸지만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고 다음에 또 나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 귤이다. 요즘은 너무나 흔한 귤이 된 한라봉. 모양도 모양이지만 깊은 단맛이 참 매력적이다. 다른 귤에 비해 껍질이 두꺼워서 그런지 잘만 보관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보통 만감류들이 잘 보관하면 4월 정도까지 먹을 수 있는데 5월을 넘기는 게 쉽지 않다. 사과, 배 등 다른 과일들도 마찬가지인데 수분이 빠지는 경우가 많고 바깥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다보니 냉장상태와의 온도 차이 때문에 마르거나 시들어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제주의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직거래 형태로 배송하다보니 5월이 되면 고민이 많다. 5월에 수확되는 감귤이 많지 않거니와 배송시간이 육지보다 하루 더 걸리고 기온마저 25도를 넘나들다보니 부패하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생긴다. 신품종인 카라향은 내게 3년이나 뼈아픈 상처를 남긴 감귤이다. 5월에 수확되는데다 당도가 높은 편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재배농가가 많지 않다보니 좋은 상품을 매입하기 어려웠고, 잘 매입한다손 치더라도 유통과정에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꾸러미 배송 후에 수십 건의 항의 전화와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밤늦게까지 일일이 사과를 드리고 보상해 드렸다. 그리고 5월에는 절대 귤 배송을 하지 말자고 다짐 다짐을 했고, 고가이지만 안전하게 판매할 수 있는 애플망고로 눈을 돌렸다.


 지역 농촌에서 일한지 6년이 되고 이제는 매주 로컬푸드를 인근 영어교육도시에 직접 배송하다보니 조금은 다른 5월을 맞이하고 있다. 5월에 수확하거나 판매가 가능한 다양한 신품종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최근에 만난 블러드오렌지는 다른 만감류와 많이 달랐다. 껍질과 속이 모두 핏빛을 연상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향이 마치 곶자왈의 백서향을 떠올리듯 은은하고 달콤했다. 그 향이 얼마나 좋은지 단 몇 개만 사무실에 두어도 향기가 공간을 꽉 채울 정도로 강했다. 껍질이 두껍다보니 보관이나 유통에도 적합한 품종이지만 당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다시 용기를 내어 찾은 카라향은 농부에 따라서 과일은 전혀 다른 품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속이 꽉 차고 단단한 과피, 당도가 높아 5월 선물로 선택했는데 한 명도 불만이 없을뿐더러 추가 주문까지 이어졌다. 4번째 시도 끝에 작은 성공을 이룬 것이다.  

홍창욱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제주의 농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단일 과일 중에 이렇게 많은 품종을 보유한 지역이 전국의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덧붙여 아쉬운 점이 있다면 1년 내내 다양한 품종의 싱싱한 귤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사과, 배처럼 특정 시즌의 과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도 중심의 과일 선별기준에 산미, 향기, 형태, 빛깔 등 좀 더 다양한 품평기준이 체계적으로 도입되어 미각의 지평을 넓혀야 향후 시장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홍창욱/무릉외갓집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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