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 서귀포문화원 문화대학장·제주언론인클럽 상임부회장

이용길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이름이 있다. 허공의 작은 별에도 이름이 있고, 외로운 초원에 피는 야생화에도 이름이 있다. 모든 생명의 탄생과 행동은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이 ‘이름’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고 있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이름이 그만큼 존귀함을 이르는 속담이다.

  이름은 그 사람 자신을 나타낸다. 그 사람의 인격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름에는 이웃들의 사랑과 기대가 담겨 있고, 긍지와 믿음이 묻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이름을 생명과 같이 중히 여기며 살아 왔다. 이름을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이들도 있다. 그 어떤 사람도 각각 이름이 있다. 그것도 바른 이름 ‘정명(正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불러야 제격이고, 일컬어져야 제값을 발휘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이름이 불리어질 때, 친밀감이 들고 일체감이 형성된다. 지난해 6월, 한 중앙일간지 보도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는 전투 당시 숨진 카투사(미군 한국군지원단) 전사자들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양국군 관계자와 참전 노병, 한국 교민 등 1백여 명이 오전․오후 아홉 시간동안이나 번갈아가며 7천52명의 이름을 모두 호명(呼名)했다. 우리말과 영어로 함께 이름을 부르며 옛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는 장엄한 행사였다. ‘한국전참전기념사업재단’과 ‘주미 한국대사관’이 6.25전쟁일에 즈음해 카투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호명식을 개최한 것이다.” <조선일보 2016. 6. 27字>

  국내에서도 전몰 장병의 넋을 기리는 호명식이 있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육군 제8사단은 올해 현충일을 맞아 1만9천649명의 전사자를 호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사단 전 장병이 무려 엿새 동안 계주(繼走)방식으로, 전사자 전원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수천수만 명의 이름을, 그것도 장장 9 시간 또는 6일간에 걸쳐 불렀으니 말이다. 호명하는 순간, 잠들었던 영령들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조국을 위해 몸 바쳤다는 당당함과 자부심이 솟구쳐 올랐을 터이다.

  조국을 위해 단 하나의 목숨을 희생한 용사들의 소중한 이름. 그 이름들을 우리는 잊은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이제부터라도 고귀한 생명을 건 그 빛나는 이름들을 부르며 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명용사’라는 단어는 어쩐지 거부감을 준다.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호국영령들은 ‘이름 모를 비목(碑木)’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분들에게 영광은커녕 불명예를 안겨드린다는 건, 죄악이나 다름이 없다. 이름을 모르면 밝혀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이름을 새로 지어서라도 보답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자로서의 도리이다.

  무명이라니, 안될 말이다. ‘무명(無名)’이 아니라, 성스런 이름 ‘성명(聖名)’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가고 있다. 숭고한 이름들을 기억하자. 거룩한 이름들을 목 놓아 호명(呼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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