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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반내의 추억을 영원히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6
서귀포신문 | 승인 2017.07.27 09:00

서귀포의 10경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 솜반내를 1등으로 꼽겠다. 물론 서귀포에는 곳곳이 아름다워 100경이라도 뽑을 수 있지만 내가 솜반내를 제일로 치는 것은 더운 여름날에 내가 받은 위로 때문이다.

서귀포로 이사 온 첫 해 여름, 년세로 얻은 집은 큰 도로변에다 집들이 빼꼭하게 들어찬 속에 있는 터라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종일 달궈졌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담벼락들이 훅훅 열을 품어 집안이 바깥보다 더 더웠다.

동네 후배들이 놀러온 그날 밤도 그랬다. 서귀포에 와서 사귄 이들은 제주토박이들로 제주여인의 강인한 삶의 유전자가 오고생이 들어차서 나의 서귀포 이주생활에 큰 의지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집안이 더워 마당에 앉아 맥주를 한잔 마시는데 모기가 어찌나 많은지, 철썩철썩 몸에 앉은 모기를 때리기에 바빠 잠시도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모기 쫓듯 손님들을 쫓아버리려는데 그들이 서로 눈맞춤을 하더니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우리가 좋은 데 데려갈게, 나갑시다”

“밤 12시가 다되었는데? 어딜...”

“거긴 늦게 갈수록 더 좋아”

아리송한 말에 홀린 듯이 따라나섰는데 큰길가에 사는 덕에 대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빈 택시가 나타났다.

“기사님, 솜반내예”

중앙로터리를 돌아 미끄럼틀을 타듯 차가 언덕길을 한번 쓱 훑어내리니 목적지였다.

1분이나 걸렸을까?

그런데 솜반내, 그곳은 열대야의 주택가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깜깜하고 너무나 조용해서 혼자가 아닌데도 살짝 무서움이 들었다.

“언니, 이쪽으로 옵서”

후배들은 발끝에 눈이 달렸는지 어둠속을 익숙하게 걸어 들어갔다.

점입가경, 말그대로 그들을 따라 들어갈수록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물, 물의 세상이었다. 맑은 물이 찰랑찰랑 한 가득, 가득찬 물은 소리가 없다더니 정말 정물화처럼 탐스러운 물이 꽉 차게 내 눈에 들어오는데, 와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순식간에 옷을 벗고 물속으로 텀벙 뛰어드는 후배들을 따라 발을 넣었다가 나는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세상에, 세상에, 물이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불볕이었고 바로옆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들이 있는데 어찌하여 솜반내의 물은 이다지 차가울 수 있단 말인가.

“언니, 이게 한라산에서 바위속을 거쳐 내려오는 물이예요. 용천수라고 들어는 봤나? 하하하”

아, 용천수. 교과서에서 배웠었다. 용천수 주변에 취락이 발달하는 게 제주의 특징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용천수를 직접 느끼게 되다니, 용천수가 이토록 맑고 시원하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없었는데.

“들어와요. 들어와서 있다보면 안 차거워”

후배들의 꼬임에도 나도 내내 발만 넣었다뺐다하며 그들의 애를 태웠다. 오십년 넘게 육지에서 물을 모르고 살아온 내 심장에 자신도 없었지만 가득한 맑은 물에 발이 닿는 순간 이미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 솜반내는 정녕 딴 세상, 열대야가 없는 청량한 신선들의 세상 같은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솜반내에 갔다가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물이 말라도 말라도 어찌나 말랐는지 바위들이 다 맨몸을 드러내고 물이 고인 곳도 높이가 무릎을 넘지 못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현수막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다이빙 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맞아요. 여기 물이 높게 가득 차서 다이빙도 할 수 있었어요”

나는 웃음거리가 된 솜반내가 안타까워 항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많던 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자꾸자꾸 솟아 내를 채우고 흘러내려 멋진 폭포를 연출하던 용천수는 다 어디로 갔는가. 오랜 세월 스며들었다가 땅에서 솟아오르기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게 용천수라는데 도대체 무슨 일로 솜반내가 바짝 타들었단 말인가.

“우리 제주도가 큰일이네, 큰일이야.”

나처럼 솜반내에 물을 만나러 왔다가 충격을 받은 사람들 입에서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중산간에 지어진 골프장과 중국자본이 지어올린 대규모의 리조트가 원인일거라는 진단에 이어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더 마를지 모른다는 걱정이 이어졌다.

그런데 걱정거리는 이게 다가 아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한진그룹 계열인 한국공항(주)이 먹는 샘물용 지하수를 더 퍼올리게 해달라고 몇 년째 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 100톤 퍼올리는 것을 무려 2배나 올려서 200톤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환경시민단체들이 반대운동을 하고 민주당이 반대해서 당장은 의회 동의안이 보류되었지만 9, 10월에 다시 터질 폭탄이라고 한다.

솜반내야, 아아 우리의 솜반내야, 미안하고 미안하다. 사람들의 돈 욕심에 신선의 세상이던 네가 타들어가는구나. 어찌해야 솜반내에 아름다운 추억들이 계속계속 쌓여 갈 수 있을지, 내 속도 타들어가는구나.

글·오한숙희 / 여성학자

 

서귀포신문  sgp19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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