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원 선거구 획정 불발 문제를 둘러싸고 제주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책임회피 모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네탓 공방만 있는 정치와 협치 실종 사건이다.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내려고 머리를 맞대어도 시간적으로 촉박한 마당에 갑론을박으로 시간만 허비하는 셈이다.

급기야 정당들이 앞장서서 5자 연석회의, 7자 연석회의를 언급하며 도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행태들도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까지 빚어진 것은 오로지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는 제주 정치의 후진성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밥그릇 싸움을 스스로 하겠다는 ‘제주 정치권 연석회의’는 도지사·국회의원·도의회 3자 회동으로 인한 결정이 유야무야된 바와 같이 더 큰 혼란을 빚을 우려가 크다. 현재 제주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동상이몽(同床異夢) 때문이다.

지방선거 6개월 이전인 12월 12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일정을 감안한다면 무엇보다 선거구획정위원회 재가동이 급선무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의 제안대로 지난 8월 24일 총사퇴 입장을 밝힌 선거구획정위원회 정상화가 최선이다.

정부입법안이 제출되려면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 의견 청취와 법제처 검토 등이 이뤄진 후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돼야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원입법으로 가는 게 옳다. 그만큼 지역 출신 세 국회의원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입법 발의 실패 요인이었던 ‘비례대표 축소안’은 논외로 치고 타 지역에 앞서 개혁입법을 선도하는 안이 나와주어야 마땅하다.

오영훈 국회의원이 지난 8월 7일에 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여론)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 7월 24일 제가 대표발의하는 것으로 국회의원 20명이 참여하는 개정 발의안 회람을 돌렸지만 민주당의 정책 입장과 배치되고, 국회 정개특위에서 향후 선거구 제도와 관련된 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당 소속 의원들이 비례대표 축소 개정안 발의에 부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내년 지방선거의 선거구 획정, 국회의원 선출방식 개편 등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도 물밑 논의가 활발하다. 내년 지방선거 때 함께 이뤄질 개헌과도 맞물려 있는 정개특위 활동이다. 제주도의원 정수 조정과 선거구 획정 역시 이러한 정개특위 일정과 개혁방향에 맞춰 지역구 개편, 비례대표 확대 등 보다 혁신적인 방안이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승자 독식 구조인 정치제도의 개혁 방향에 맞춰 제주도의회 구성 역시 도의원 선출 투표에 참여한 도민들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비례성과 등가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당제의 의미를 살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요소 역시 가미될 필요성이 있다.

선거구획정위 재가동을 전제로 할 때에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제주도의회 입법고문을 역임했던 명예제주도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 같은 전문가 등을 위원으로 위촉 또는 자문역으로 함께한다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강창일·오영훈·위성곤 국회의원 등은 이 문제(선거구 획정)에 대해 발을 빼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배제돼야 한다”는 일부 정치권의 발언은 제주 정치계가 보여주는 구태의 단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회 통과를 위해 제주지역구 세 국회의원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제주 정치계 연석회의를 통해 결정된다면 국회 원내 정당들을 동원해 입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은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무책임한 말장난에 불과할 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갈등과 말다툼보다 적극적인 선거구 획정 관련 합리적인 방안, 의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낼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으로서 군소 야당들의 요구를 ‘대답없는 메아리 같은 공허한 외침’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손을 맞잡고 제주도와 도민을 위해 함께 논의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중지를 모으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

제도적 절차에 의해 진행돼야 할 선거구 조정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서로 상처를 주는 말폭탄, 갑론을박에 머물 단계는 이미 지난 상황이다. 역사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한 때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원희룡 지사는 열일을 제쳐두고서라도 도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재가동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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