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15

(서귀포신문 자료사진)

“와, 저 나무 정말 멋지다”

“진짜, 너무 멋지다”

자동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다 이런 감탄 한 번 안 해 본 사람 없을 것이다. 균형 있게 가지를 벋고 빽빽하게 잎을 달고 있는 아름드리 고목 앞에서는 경건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 나무 밑에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어르신들은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운좋게 돌아치며 깔깔대는 아이들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도 저런 때가 잇어신디, 세월이 정말 화살처럼 빠르지, 엊그제 아기였던 것 같은데, 오늘 백발이네, 너희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인생... 이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나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 보기에는 백발인 너희들도 어린애로다’

마을을 상징하고, 마을 사람을 불러 모으고, 마을 사람들 모두의 기억 속에 인생의 나무로 새겨지는 이런 나무들은 지나는 나그네들이 아픈 다리를 쉬며 마을 인심을 체험하는 곳이기도 했다. 지번이 없던 시절에는 느티나무집, 감나무집, 대추나무집, 해서 나무가 특정한 집의 대명사가 되기도 할 만큼 나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반려자였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동네 큰 나무 밑에서 애들과 놀았어요. 심심할 때 거기 가면 애들 한 두 명은 꼭 있었거든요. 어른이 되어 타지에 나가 살다가 집에 올 때는 버스에서 그 나무가 보이면 비로소 집에 온 것을 실감하게 돼요.”

마흔이 안 된 사람도 이렇게 나무를 기억한다.

제주에는 나무가 많다 못해 흔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너무 쉽게 나무를 베어버린다. 자고나면 생기는 게 건물이라고 할 만큼 서귀포에 건축붐이 불면서 많은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졌다. 내가 사는 신시가지만 해도 곶자왈처럼 되어 있던 땅들에 작년 봄부터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적지 않은 나무들이 사라졌다. 매일 오가며, 여름에는 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교감했던 나무가 없어졌을 때의 충격은 친구의 죽음에 비길 만큼 컸다. 나무를 베지 않고 집을 지을 수는 없었을까.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원망어린 물음표가 솟았다.

남원읍 올레코스를 걷다가 길가의 게스트 하우스에 나도 모르게 들어선 적이 있다. 돌창고를 개조한 건물도 매력적이었지만 건물 사이에 군데군데 심어진 나무가 마치 조각품을 세운 듯 멋져서 이끌려 들어간 것이었다. 집주인은 나무들을 따로 심은 게 아니라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을 그대로 두었을 뿐이라고 했다. 멋진 개념남이라고 한참 칭찬을 했더니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도 마세요. 집짓는 인부삼춘들이 싹 베고 편하게 빨리 집짓고 나무 다시 심으면 되지 않냐? 널린 게 나무다, 이러시는데 오래 걸려도 되니까 나무를 그대로 두자고 때론 사정하고 때론 싸우다시피 하면서 겨우 지었네요.”

호주, 자연이 아름답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 나라는 나무 한그루를 베자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 집 앞마당에, 내 손으로 묘목을 심어서 키운 것이라 해도 그 나무를 베자면 정당성 여부를 판단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무 또한 호주의 당당한 국민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제주는 좀 모순이에요.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일출봉을 자랑하기 위해서 몇 년간 전 도민이 나서서 홍보를 했으면서 정작 주변의 나무들은 너무 쉽게 베어 버려요.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과시만 하는, 이런 자연자랑은 모순 아닌가요?”

동네의 멀쩡한 정든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아픈 경험을 한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환경 제주 운운하는 것은 사기나 다름없다는 자성어린 비판까지 했다.

가장 최근의 충격은 서귀포 신청사가 지어지면서 오래된 나무가 사라진 것이다. 서귀포시청 신청사가 중앙로타리에서 시원하게 보이던 한라산을 탁 막아버린 것도 흠인데, 그 앞을 오랫동안 지켜온 수문장 같은, 어찌보면 서귀포시청의 역사라고 할 고목마저 사라지다니... 세금으로 하는 공공사업인데... 설계공모에 이 나무를 ‘오고생이’ 지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면... 아쉬움에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무는 지구에 우리보다 먼저 정착한 선주민이다. 나무가 산소를 내뿜어주지 않으면 인간은 건강하게 살 수 없다. 아마존밀림이 햄버거 패드용 소고기를 만들기 위한 목장을 위해 남벌되면서 이상기후현상으로 해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 중산간까지 토건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제주의 나무들은 대량 학살의 위험에 처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야, 나무야,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야, 미안합니다. 나무에게 주거의 권리를!!!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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