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산업시대에 돌절구를 찾는 이유

어머니의 부엌에는 가마솥과 옹기가 있었고, 나무도마에 무쇠 칼, 곡식 터는 체, 크기가 다른 주걱이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돌, 나무, 쇠, 흙. 자연에서 모시고 온 전통 조리도구였다. 연장만 봐도 그 집 살림을 가늠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별 생각 없이 티브이를 보는 중이었다. 세끼 밥만 해 먹는 프로그램에서 커피콩을 맷돌에 갈아 마셨다. 시골살림에 핸드밀이 웬 말인가? 급한 대로 맷돌을 활용했겠지만, 머릿속은 이미 상상의 나래를 폈다. 콩이 맷돌에 갈리는 사각사각한 소리, 부드럽게 돌릴 때 손에 감촉, 그리고 치명적인 커피향. 그윽한 향기가 브라운관 너머로 전해졌다. 혹시 티브이가 4D라도 된 건가?

영국의 유명 요리사이자 방송인, 제이미 올리버는 평소 가공식품 사용을 반대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먹이자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의 주방에서 가장 주목받은 물건은 매끈한 칼날의 감자칼도 아니요, 국수 가락이 엿가락처럼 뽑아지는 파스타머신도 아니요, 가장 오래된 방식의 돌절구였다. 그는 작은 돌절구를 이용해 각종 허브양념을 찧으며 요리 쇼를 펼쳤다.

향이 살아 있는 음식이 맛있다. 안타깝게도 향은 휘발성이다. 요즘은 믹서와 그라인더가 절구를 대신한다. 여간해선 향을 지켜내기 힘들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를 그대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절구의 움직임은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과 향을 선사한다.

한국음식의 감초 역할을 하는 참깨는 요리의 마지막 순간, 분도를 적당히 조절해 빻는다. 먹기 직전 음식 위에 뿌려야 침이 꿀꺽 넘어가게 고소한 향이 퍼진다. 이탈리아 음식인 알리오 올리오의 마늘을 찧거나 바질페스토의 잣가루의 고소함이 필요할 때 절구로 빻아야 풍미가 확 살아난다.

▲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남방아

절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과 밀접한 농기구이다. 어머니, 할머니, 돌도끼 들고 뛰어다니던 조상님도 농사를 시작하고 절구가 필요했다. 제주의 ‘남방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나무를 어른 양 팔 한가득 둘레로 자른 후 며칠간 통나무 속을 함지박처럼 움푹하게 파냈다. 홈 가운데 구멍을 내어 돌혹을 박았다. 이를 ‘확’, 또는 ‘돌확’이라 불렀다. ‘돌확’에 보리나 밀 등을 넣어 찧으면, 나무 테두리가 곡식이 밖으로 튀는 걸 막아줬다.

제주의 어머니는 바다에서 물질하다 밭일하다 집에 와서 또 물 길어다 밥을 하기 위해 절구질을 했다. 겨울 밤은 길기도 하여라, '이여 이여 이여도 호라' 노래를 부르며 졸음을 쫒았다. 곡식이 빻아지는 소리, 구수한 향이 방 안에 퍼져갈 때면 아랫목 찾아 맴돌던 어린 자식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토끼도 절구질하느라 고단한 달밤. 이여도 방에 이여도 방에이여 이여 이여도 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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