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은 거대 갤러리, 송악산 이중화산체

송악산 인근에서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겨울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화창한 날이다. 푸른 하늘을 수놓은 뭉게구름과 그 아래 산들거리는 바람 그리고 넓게 펼쳐진 초록빛 바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제주를 만든 신은 100만년에 걸쳐 물과 불을 빚어 이 섬을 만들었는데, 특별히 서부해안에서는 깎고 다듬는 작업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고산의 수월봉과 차귀도, 대정의 송악산과 가파도‧마라도에서 사계의 산방산과 용머리로 이어지는 해안에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사 갤러리를 남겼다.

송악산은 ‘솔오름’을 한자로 차용한 이름인데, 민가에서는 이 오름을 '절울이 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절'이 제주어로 '파도'를 뜻하는데, 파도가 우는 오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송악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푸른 파도가 끊임없이 절벽에 부딪쳐 깎아내는 소리를 들으면 '절울이'라는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 한라산의 오른쪽에 남작하게 보이는 게 송악산이다. 송악산 가운데 정상부에 분석구(알오름)가 얹혀진 이중화산체 구조다.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 한라산의 오른쪽에 남작하게 보이는 게 송악산이다. 송악산 가운데 정상부에 분석구(알오름)가 얹혀진 이중화산체 구조다.
산이수동 마을에서 바라본 송악산. 진지동굴 등이 붕괴돼 출입이 제한된다.

멀리서 송악산을 바라보면 산체 정상부 가운데 봉우리 하나를 얹혀 놓은 모양으로,  마치 넓은 단층집 옥상에 작은 옥탑방을 가져다 놓은 형상이다.

송악산 입구에서 완경사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걷노라면, 평지가 길게 이어진다. 그 평지 위에서 주민들은 농사도 짓고, 말도 키운다. 좁게 이어지는 평지가 끝나갈 즈음에, 망원경 시설을 갖춘 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전망대를 지나면 무덤모양을 한 조그마한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음 김상헌은 1601년 순무어사의 명을 받고 제주에 부임했다. 김상헌이 당시 송악산의 독특한 형상을 구경하고 남긴 기록이다.

'산은 멀리 뻗는 산세가 없고 바다에서 툭 튀어 일어서 있는데, 둘레가 겨우 몇 십리이다. 울멍줄멍하고 울퉁불퉁한데 동남쪽 한 구석은 평평하고 넓은 것이 마치 제단과 같다. 몇 백 명이 앉을 만한데 그 아래는 높은 절벽이다. 몇 만 길도 더 될 것이다. 우뚝하게 서 있어 바닥을 볼 수도 없다.'-<남사록>에서

제단같이 평평하고 넓은 곳은 용암이 흐르다 고여서 그 표면이 판판하게 된 용암연(lava pond)이다. 그리고 그 인근에 울퉁불퉁한 것들 가운데 가장 큰 게 분석구(cynder cone, 알오름)고, 나머지는 소분석구복합체(cynder conelet complex, 알봉군)다. 분석구는 하논분하구의 가운데 알오름처럼 이중화산체 중심부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아래 우뚝하게 서있는 절벽은 응회환의 바깥이 파도의 침식으로 깎인 것이다.

최고 높이가 해발 104미터에 불과한 작은 화산임에도 송악산은 여러 개의 화산단위로 구분되는 복잡한 구조를 띤다. 이 산이 지질학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는 이유다

분석구(알오름, 좌상)과 분석구 정상의 분화구(우상), 소분석구(알봉, 좌하)과 소분석구복합체(알봉군, 우하). 송악산 분석구는 수성화산체의 분화구 가운데 솟아난 오름이다. 분석구 앞쪽 농경지는 수성폭발 후에 형성된 분화구였다.

지구가 마지막 빙하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약 1만 2천 년 전부터다. 빙하기에는 지구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최고 120미터 정도 아래에 있었다. 1만년 이전에는 이 일대는 육지였다. 그런데 송악산을 만든 화산활동이 얕은 물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송악산의 나이는 1만년보다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영관 경상대 교수는 송악산의 형성연대를 약 7000년 전인 것으로 추정했다.

송악산이 다채로운 구조를 띠는 이유는 마그마의 분출이 진행되는 도중에 화구 주변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추정한 송악산 화산체의 형성 과정이다.

송악산의 형성과정 그림.(사진은 이우평의 '한국지형산책')

1. 송악산 응회환 형성 : 당시 이 일대는 얕은 바다였는데, 지하에서 솟아오른 마그마가 바닷물과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화산재와 수증기, 돌조각 등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변에 원형으로 쌓여, 응회환을 형성했다. 이 응회환은 외륜의 두께가 약 85m, 분화구의 지름이 약 800m에 달하고, 외측 지름이 4km에 달하는 규모였다.

2. 수성화산활동의 중단 : 분화구 주변이 응회환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해수가 분화구 안쪽으로 유입되지 못했고, 마그마가 물과 직접 접하지 못하게 되어 수성화산활동은 끝났다.

3. 분석구 형성 : 응회환의 분화구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되던 중 화구에 차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새로운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이 때 분출한 화산쇄설물은 분화구 주변에 쌓였다. 송악산 정상의 분화구 주변에 쌓인 붉은색 스코리아(제주 사람들이 ‘송이’라고 부르는 붉은색 자갈)도 이때 분출됐다.

4. 용암연 형성 : 화구에 가스가 제거됨에 따라 화산활동은 용암의 분출로 이어졌다. 이때 분출된 용암들이 응회환과 분석구 사이를 채워, 해발 35~50m 높이에 판판한 용암연을 형성했다.

5. 소분석구 복합체 형성 : 용암연이 형성된 이후, 그 위에 수 미터 높이의 작은 알봉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을 소분석구 복합체라고 부른다. 송악산 화산체에는 무덤 모양을 하고 있는 소분석구들이 20여개가 있는데, 소분석구들이 실제로 마그마 분출로 형성된 것인지, 내부에서 가열된 지하수가 폭발하여 형성된 것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다.

6. 절벽 노출 : 응회환은 북쪽을 제외한 외륜이 파도의 침식을 심하게 받아 깎여나갔다. 이 과정에서 해안과 접한 곳에는 가파른 절벽이 형성되었다. 특정 부분에서는 용암연의 하부가 노출되기도 했다.

송악산 분석구(가운데 알오름)의 정상부에는 둘레 500m 정도에 깊이 약 80m에 이르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 경사각이 70도로 매우 가파르다. 분화구가 보통 것보다 크고 깊은 것으로 보아, 이 분화구가 만들어질 당시 폭발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분화구 안에는 온통 붉은색 스코리아로 덮여 있다.

파도에 침식된 응회환의 사층리가 동쪽 산책로에 노출됐다. 마치 시멘트 반죽이 굳은 것과 비슷하다.
송악산 남쪽 산책로에 절벽이 노출됐다. 응회환의 상부를 현무암이 덮고 있는 구조다. 송악산이 이중화산체임을 알수 있다.

몇 해 전부터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져 분석구 주변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에 지난 2015년에 서귀포시청이 출입을 통제했다.

송악산의 서쪽과 남쪽 해안의 절벽은 파도에 깎여 그 내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일부 구간에서는 현무암이 응회암 사층리를 피복하는 지질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 응회암의 사층리는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응회환의 외륜이고, 현무암은 용암연을 만들었던 용암이 굳어진 것이다.

송악산은 휴지기 없이 1회의 분화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이므로 단성화산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그마가 분출될 당시 화구의 환경이 바뀌면서 응회환과 분석구가 연속적으로 만들어져 복수의 화산이 존재하므로 복식화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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