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한파는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얼굴

한파가 지나간 뒤 비닐하우스 물홈에 고드름이 종유석처럼 길게 걸려있다.

지난 2016년 1월, 제주도민들과 귤나무가 감당할 수 없는 한파가 제주에 들이닥쳤다. 1월 24일에 기록된 최저기온은 성산이 영하 6.9℃로 가장 낮았고 서귀포 영하 6.3℃, 고산 영하 6.1℃, 제주시 영하 5.2℃ 순이었다. 이날 서귀포가 기록한 영하 6.3℃는 제주시보다도 낮은 것으로 서귀포가 기록한 것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최저였다고 한다.

당시 한파의 영향으로 귤이 나무에서 얼었고, 귤나무들은 고사됐다. 공항이 폐쇄됐고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왔던 여행객들은 며칠 동안 공항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겨지던 이상 한파는 2년 뒤 다시 제주를 강타했다. 지난 1월 10~12일 제주에 예상을 뛰어넘는 강추위가 들이닥쳤다. 당시 기상청은 새벽 최저기온을 영하 1도 정도로 전망했지만 수망리에 영하 4.6도, 가시리에 영하 5.2도 등 예기치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감귤과 월동채소가 갑자기 닥친 한파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했다.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월 23~26일에 2차 한파가, 2월 3~8일까지 3차 한파가 몰려왔다. 2차 한파는 장시간 영하의 날씨로 이어졌고, 3차 한파에는 폭설이 며칠째 이어졌다.

지난 2월 초순에 성산읍에 폭설이 내린 모습.
장기간 눈이 내리면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내렸다.

작물의 피해는 물론이고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일으켰다. 한파가 지속되는 동안 제주공항이 폭설로 폐쇄되는 일이 잦아졌다. 금년 찾아온 한파는 극기온으로는 2년 전에 비해 덜했지만, 한파의 지속시간과 적설량 등에서는 2년 전 규모를 훨씬 능가했다. 이상 한파가 우연히 혹은 드믈게 찾아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온난한 기후의 일본 규슈 지역이 폭설과 눈 폭풍으로 항공기들이 연달아 결항되고 교통이 마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도, 나이아가라 폭포가 얼어붙었고 폭설로 도로가 마비돼 주민들이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난영화에서나 봄직한 이상 한파가 지구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겨울철 이상 한파는 과거의 삼한사온 기후패턴과 달리 저온의 날씨를 장기간 지속시킨다. 일반적 한파는 겨울철 시베리아 대륙에서 이동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반면, 이상 한파는 북극지방에서 이동해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북극한파’의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데 기후 전문가들은 겨울철 이상 한파가 지구온난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진다는 지구온난화와 기록적인 한파는 전혀 상이한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주장이다.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는 극지방의 빙하를 빠른 속도로 감소시켰고, 그 결과 북반구 중·고위도 지역의 기압배치와 대기순환을 교란시킨다고 주장한다.

극소용돌이와 제트류 모식도. 제트류에 의해 극지방에 묶여있던 극소용돌이가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 지방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기 이전, 겨울 북극은 빙하와 눈으로 덮인 하얀 대륙이었다. 햇빛이 비쳐도 빙하와 백설이 태양에너지 대부분을 반사시켜 겨울 내내 매우 낮은 온도를 유지했다. 북극 대륙 지표의 온도는 매우 낮았고 냉각된 공기는 그만큼 무거워져 고기압 상태를 유지했다.

북극의 강한 고기압은 차가운 공기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를 ‘극소용돌이’(Polar vortex·)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이 극소용돌이를 휘감고 제자리를 지켜주는 공기의 흐름을 제트류라고 한다. 제트류는 저위도 상공에서 고위도(극지방) 상공으로 흐르면서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이전만큼 태양빛을 반사시키지 못하게 됐다. 지표에 흡수되는 빛에너지 양이 많아지면서 극지방 지표의 온도도 상승했다. 극지방과 저위도지방의 기압차도 줄어들어 저위도에서 극지방으로 흐르던 제트류의 세기가 약해졌다. 제트류에 묶여있던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이전에 비해 자유로워졌다.

전남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박태원 교수 연구팀은 이상 한파와 관련해 지난해 8월에 학술지 <과학영재교육>에 발표한 논문 ‘지구온난화와 빈번한 한파 발생에 관한 연구’를 주목할만하다.

박 교수팀은 전 지구적인 자료들을 분석해 지구온난화와 한파, 제트류 등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이 저위도지역 보다는 고위도에서 크게 나타나고 이는 결국 저위도와 고위도 지역의 온도차를 감소시킨다고 밝혔다.

그리고 감소된 온도차 때문에 제트류가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고위도 지역의 차가운 공기가 저위도 지역을 빠져나가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박 교수팀은 하지만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실제 온난화는 제트류 뿐만 아니라 엘리뇨·라니냐, 해류, 해수의 심층순환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보충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북극의 찬 공기가 더 이상 북극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겨울철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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