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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때 사름덜, 삶이 아닌 삶을 살아온거라”나의 삶, 역사의 뒤안길 - 강정동 97세 윤경노 옹(1)
안창흡 | 승인 2018.04.02 11:47

  서귀포시 강정통물로 90(강정동) 주소지에 대를 이어 평생을 살아온 올해 97세 윤경노 옹. 살아있는 강정마을 역사인 분이다. 100세 가까이 된 연세에도 어린 시절부터 청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심지어 마주쳤던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다. 살아온 날들의 기록은 윤 옹이 펴낸 『鄕土 江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강정마을은 물론 서귀포시, 제주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윤경노 옹은 4·3과 관련한 기억부터 풀어 놓으셨다.

 

강정동 윤경노 옹(97세)

평생을 이 집에서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어. 이제 곧 4‧3이 돌아오고 있는데 7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스물일곱 신혼 때, 그 팔팔하던 청년이 이제 나이가 아흔일곱이니 말 해 무엇하나.

글쎄, 4‧3 때 겪은 일? 지금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누구가 이러저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할 것인가? 그 후손들이 지금 모두 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냥 나 혼자 가슴에 묻고 무덤까지 가야지.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러니까 거의 모두 좌도 우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니까, 그것이 더 원통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우리 강정마을은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설촌된 마을이야. 인심 좋고, 어느 마을보다도 단합이 잘 되고, 어른들을 섬길 줄 아는 애향심이 강한 마을이지. 마을 이름은 물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물 江자에 물가 汀자를 써서 ‘江汀’이고. 논 면적은 130정보(1정보는 3,000평으로 약 9,917.4㎡)나 되었어. 쌀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강정 애긴(아기는) 곤밥(쌀밥)을 주민(주면) 울곡(울고), 조팝을 주민 안 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지. 제주선 ‘第一 江汀’이라 부르기도 했고.

나는 일정 때 이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주민들과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평생을 살아왔어. 특히 1940년대를 전후하여 10여년간은 그 고난이 더 심했다고 할 수 있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을 것 잘 입지 못하고 신을 것을 신지 못해서 짚신을 조리 삼으면서 살아 온 거라.

당시에 젊은 사름들이야 강제 징용에 징병, 노무자로 근로보국대로 동원되었으니까, 말해 뭐하나. 그것 뿐이면 좋을텐데 소와 돼지 공출에 농작물 식량 공출, 유기그릇 제기들까지 전부 내어 놓아야 했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살아온 세월이라 할 수 있어.

강정마을 중심가, 강정초등학교 주변 현재의 마을 풍경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니까 감옥에서 풀려나는 기분으로 만세소리를 부르면서 국민들이 환호했는데, 그당시 우리 강정마을에선 국민학교 인가를 받는 것이 숙원사업이었어. 1946년 9월 1일에 국민학교 설립 인가를 받게 되었지. 당시에 마을주민 모두는 일심동체가 되어서 학교 짓는 일에 힘을 모아 나서게 됐던 것이야.

일부 젊은이들은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을 결성한다면서 마을이 어수선해지기도 했지. 경찰들과 서청(서북청년단)이 감시하는 것을 눈치 챈 당시 몇몇 젊은이들은 일본으로 밀항하기도 했으니. 그 중에는 더러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90 이상 된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 번 귀향도 못해본 채 돌아가시거나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지.

아마 1948년 가을이었을 거야. 산사람들이 내려와서 우리 마을 고기생씨하고 김기옥씨 두 사람을 납치해갔다는 소문이 돌아서 마을이 아주 귀숭숭했지. 밤에 와서 끌어가버린 것은 큰 일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고기생씨가 납치되어서 산으로 오르던 중에 도순천 진소 옆을 지날 때였다는데 그 진소 옆 절벽으로 철퍽 뛰어들었다고 했지. “잡혀 강(가서) 죽느니 차라리 여기서 자살하는 게 낫겠다” 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야.

깜깜한 밤중이었으니까 산사람들 생각에도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죽은 줄만 알고 확인하지 않은 채 그냥 산으로 가버렸다고 하대. 고기생씨는 날이 밝아서 정신을 차려보니 절벽에 붙어 있는 나뭇가지에 용케 걸려서 살아나게 됐다고 했어. 참말로 구사일생이었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집에 돌아왔어. 그렇게 살아난 고기생씨는 4·3사태가 끝날 때까지 이장 겸 민보단장을 지냈지. 그 이후에 중문면의회 의장도 했고 면장 입후보까지 했었는데,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 김기옥씨는 산으로 납치된 후에 생사불명인 채로 종적을 알 수 없는 상태였지.
                                                                                                  

                                                                                   정리·안창흡 기자

 

안창흡  rijin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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