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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마을 사람들 불러다가 매타작했지”나의 삶, 역사의 뒤안길 - 강정동 97세 윤경노 옹(3)
안창흡 | 승인 2018.05.18 09:20
서귀포시 강정통물로 90(강정동) 주소지에 대를 이어 평생을 살아온 올해 97세 윤경노 옹. 살아있는 강정마을 역사인 분이다. 100세 가까이 된 연세에도 어린 시절부터 청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심지어 마주쳤던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다. 살아온 날들의 기록은 윤 옹이 펴낸 『鄕土 江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강정마을은 물론 서귀포시, 제주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윤경노 어르신은 4·3과 관련한 기억부터 풀어 놓으셨다.
강정마을의 안강정 주변 해안 전경. 사진=안창흡
윤경노 옹

안강정(內江汀, 강정 안쪽에 있는 마을로 당시 10여호) 하면, 양갑생 노인 생각이 나. 양 노인은 난리가 터져서 마을을 소개허는데도 말을 듣지 안허엿어. 혼자 엉장(해안가 돌무더기나 바위 등이 맞물려 생긴 굴)에 내려가서 살았는데, 당시 월평에 주둔허던 제주계엄사령부 중문지구 파견대 소속 고삼봉이라는 중사가 해안순찰을 나갔다가 이 양 노인을 발견허게 된거라. 고 중사는 양 노인을 빨갱이 연락병으로 생각허였던 것이지.

바닷가에서 톨(톳)을 캐는 사름덜이 그신새(오래된 초가집 지붕에서 벗겨낸 묵은 띠)로 불을 피워 몸을 녹이던 곳이 여러 군데가 있어서 더 의심허게 된 것이었어. 그때야 사실 확인도 없이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할 때였으니까, 고 중사는 당장 강정리장을 월평주둔소로 오라고 불렀어.

그때 마을 이장은 이남규씨였는데 사직허고 새 이장에 고기생씨가 뽑힌 뒤였어. 인수인계를 받기 바로 전이어서 이남규 이장이 가야하는데, 환자로 드러누워 있는 바람에 고기생 새 이장과 민보단 부단장을 맡고 있던 나하고 단원 5, 6명이 동행허연 갔어.

고 이장은 사귐성, 붙임성이 워낙 좋은 사람이어서 고 중사를 만나자마자 “종씨, 종씨!”허멍 엉강(상대의 맘에 들기 위해 애교, 아양을 떠는 일)을 부렸지. 그런데, 고 중사는 벽장에 있던 흰 사기병에 든 술을 병나발 불더니 다짜고짜 고 이장을 매질허는 거 아니라? 매질허면서 내가 팔뚝에 차고 있는 완장을 보더니 “네가 부단장이냐?” 허멍 나한테까지 몽둥이 태작을 허는 거야.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은 거라. 당장 이남규 이장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했으니까. 어떻게 하나. 같이 간 단원들이 그길로 뛰어가서 병석에 누워 있는 환자 이남규 이장을 담요로 둘러싸서 업고 뛰어왔지. 그 장소가 월평마을 향사였는데 마을 어르신, 유지들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어.

이 이장이 방 안으로 들어서니까 고 중사는 아무 말도 허지 안허영(않은 채) 장작개비를 위로 쳐들면서 태작질을 허는 거라. 장작개비를 위로 올릴 땐 천장널이 다 터져나갈 정도로 심하게 매를 쳤어.

그날, 죄도 없는 이 이장과 고 이장, 나까지 얻어터졌는데, 이 이장은 중문에 있는 처조카네 집으로 업혀가고 고 이장은 단원들한테 겨우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지. 그 일이 있은 후에 며칠 지나니 매를 쳤던 고 중사가 없어졌는데, 광대코지(강정마을과 하원마을 중산간 경계 법정사 인근 지경) 부근에서 무장대들한테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

그리고 그 당시 서귀포경찰서에서 마을을 경비해야 한다면서 축성을 허라는 명령이 내려왔어. 명령서 내용을 읽어보니까, 마을의 중심 동네만 성을 쌓아서 보호하라는 것이었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 남쪽으로는 국민학교 운동장 앞에서 동서편으로 쌓아가게 하고, 북쪽으로는 당시 윤성국씨네 집 윗편 밭으로 해서 남쪽에서 동서편으로 축성허라 하고, 동쪽은 묵은 향사 동편 돌담부터 남북으로 쌓고, 서편은 골새 동쪽에서 남북으로 성을 쌓으라고 하는 것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동너븐밭과 더넷동네(웃동네 냇가에 있는 동네 이름), 북허터와 안강정, 섯동네를 전부 소개시키라는 명령인 거야. 정말로 엄청난 일이었지. 아무리 생각허여도 이 동네들을 떼어내버리는 것이 말이 안되었지만 명령이 떨어진 일이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어. 당시에 고기생씨는 마을 이장 겸 민보단장이었고 난 부단장이었지. 그때 중문국민학교에 있었던 제주도계엄사령부 중문지구에 서봉호 소위가 파견대장으로 있던 때였어.(정리 안창흡 기자)
    

안창흡  rijin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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