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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돌아가멍 성을 쌓을 때, 잊혀지지 않는 얘기도 많아”나의 삶, 역사의 뒤안길 - 강정동 97세 윤경노 옹(4)
안창흡 | 승인 2018.05.18 10:09
서귀포시 강정통물로 90(강정동) 주소지에 대를 이어 평생을 살아온 올해 97세 윤경노 옹. 살아있는 강정마을 역사인 분이다. 100세 가까이 된 연세에도 어린 시절부터 청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심지어 마주쳤던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다. 살아온 날들의 기록은 윤 옹이 펴낸 『鄕土 江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강정마을은 물론 서귀포시, 제주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윤경노 어르신은 4·3과 관련한 기억부터 풀어 놓으셨다.
현재 마을 안에 4.3 당시 축성했던 성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제주해군기지와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에 나붙은 '구럼비야 보고싶다' 구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진=안창흡
윤경노 옹

그때 월평동에 사는 송화준씨가 서봉호 소위를 대장으로 모시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한 가지 꾀를 내게 됐어. 묘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지. 내가 생각한 것을 고기생 리장한테 말했어.

마을 해녀 몇 분을 동원해서 생복(날전복)과 구젱기(소라)를 잡아 준비하자는 것이지. “그것을 들고 서봉호 소위를 찾아가서 우리 마을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소개할 동네 범위를 줄이고 축성 범위를 넓혀달라고 사정해보자”는 것이었어.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당장 해녀분들에게 생복과 소라들을 큰놈으로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준비가 됐어.

리장과 함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마을 소사에게 해산물을 걸머지워서 눈보라가 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중문지구를 방문한 거라. 가서 보니까 서 소위는 출타중이고 송화준씨 혼자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대. 송화준씨한테 이야기를 풀어놓았어. 마을이 처한 상황과 동서 방향 끝쪽에 있는 동네들을 제외해서 축성하며 소개해버리면 그 사람들 다 죽을지 모른다고 애로점을 소상하게 설명하면서 말을 잘 전달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마을로 돌아왔지.

다음날 날이 밝으니 서봉호 소위가 우리 마을에 직접 행차한 거라. 와서 여기저기 다 돌아보더니 축성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말하대. 반드시 소개시켜야 한다던 3통 150여호를 살리고, 섯동네 바깥쪽으로 축성하라는 명령을 새로 내렸지. 얼마나 지꺼진지(기뻤는지), 옆에 있다가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감사하다면서 박수까지 쳤지.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송화준씨가 말을 잘 옮겨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주.

명령이 새로 나기 전날에 더넷 동네는 이미 소개된 뒤여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까딱했으면 3통 150여호도 소개되어 쑥밭이 될 운명이었는데 송화준씨 노력으로 화를 면하게 된 것이었으니까,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어. 당시에는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송화준씨한테 직접 말하거나 주위에 발설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게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 사실대로 여기저기 말했다가는 언제 상부로 말이 들어가서 서로가 모두 화를 입을지 모를 때였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송화준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당시에 하지 못했던 인사치레를 했는데 뒤늦은 감사 인사가 얼마나 미안하던지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일이주. 그당시를 살았던 강정마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어.

명령에 따라서 축성을 하는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작업에 나섰지. 마을을 둘러 겹성을 쌓았어. 마을 안팎의 밭담, 돌담 있는 것을 거의 다 허물어서 날라온 제주돌로 쌓은 돌담성은 밑넓이가 6척(1척은 약 30.3㎝), 높이는 약 13척(약 4m)이나 됐지. 또, 성 밖으로는 약 6척 깊이 호를 팠어. 그 호 위에는 가시나무 같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을 얹어 위장하고. 성담의 중간 중간에 8개 포대와 24개 망원대를 설치했는데, 경찰지서 출입문이나 식수를 길러 나다니는 출입문은 터서 거기에 보초를 서게 했었지.      

축성 변경으로 인해 주거지 공터가 많이 나오게 되었는데, 고기생 리장은 지주의 양해를 구해가면서 소개민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서 살림을 풀게 해주기도 했어. 동광동과 더넷동의 소개민 80여 가구는 대추남밭(현 의례회관)과 윗새질 동네에 살게 했고, 세별 북허터 소개민들은 예솟밭 동네로, 안강정 주민은 서당카름 동네, 이구 소개민은 새왓 동네(현 마을회관 서북쪽)를 주거지로 정해 집을 지어 살게 했었지.(정리 : 안창흡 기자)

안창흡  rijin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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