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신문이 만난 사람] 고권일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

고권일 서귀포시민의책위원회 위원장.

대학신문사와 제주MBC 등 한 때 언론사에 몸담았을 적의 이야기, 여고 교사로 부임한 후 40대 교장으로 학교의 변화를 이끌었던 경험, 장애인 학교의 교장으로 정년을 마무리한 소회 등 그간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처럼 풀어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소신과 변화, 개혁 등이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언론사도 소신을 잃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낙오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22일 고권일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다. 서재에는 그동안 출간한 수필집 세 권이 다른 책들과 함께 꽂혀있다. 그 가운데 가장 나중에 출간한 <자모사(慈母思)>(도서출간 열린문화, 2016) 한 권을 선물로 내줬다. 책은 일상의 여러가지 일들을 소재로 삼았지만 가장 울림이 큰 건 구순 노모를 향한 장남의 절절한 사랑가다.

고권일 선생은 문학과 글쓰기가 좋아 제주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고, 학보사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기자의 꿈을 좇아 제주MBC에 입사해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방송국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선친이 돌아가셨고, 낙심해서 고향인 위미로 돌아왔다. 그리고 삼성여고에 국어교사로 채용돼 교육계에 입문했다.

이후 마흔에 삼성여고 교감이 됐고, 마흔 다섯에 교장으로 승진했다. 교장으로 임기를 마친 후에도 정년까지 기간이 남아 잠시 평교사 생활도 했다. 이후 특수학교인 제주영송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다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전업농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방송국 수습기자에서 교사로 직업을 바꾼 후의 생활이 흥미롭다. 원래 꿈은 기자였고, 교사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교단에 몸담게 됐는데, 당시 학교는 긴장감이 없고, 교사들은 대체로 사명감이 부족했다.

고권일 선생이 그런데 방송사 수습기자 생활을 하던 터라 모든 면에서 빠릿빠릿했다. 교장과 이사장이 보기에는 교직생활에 가장 성실하고 모범적인 교사였다.

고 선생은 당시를 떠울리며 “내가 보기엔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마흔에 교감이, 마흔 다섯에 교장이 됐다”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 교장이 되고 보니 평교사 가운데 10년 선배교사가 있고, 심지어는 학교 은사님도 계셨다. 이사회에 청탁을 한 결과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이사장이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며 젊은 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설립자 가족이 18년동안 교장을 맡아 운영하던 학교다. 서귀포에서 문제가 많고 공부를 등한시하는 학생들이 주로 오는 학교였다. 그래서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교사들이 다른 학교로 연수도 가야했고, 다른 학교 교사들이 삼성여고를 방문해 수업을 참관도 했다. 학교의 틀 안에 갇혀있던 교사들 시야가 점점 넓어졌다. 교사들이 변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변했다. 삼성여고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런데 교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교사 한 명은 사표를 쓰기도 했다.

고 선생은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학생들에게 범죄를 짓는 것이다. 소신을 갖고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교사가 돼야 한다”라고 말하며 소신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교육당국이 체벌을 금지했지만 스스로 마당에 오죽을 심어 회초리를 만들어 교사들에게 나눠 줬고 수업 전에는 휴대전화를 모두 회수해 학교에서 사용을 금지했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산림청과 유한킴벌리, 제주도청, 서귀포시청 등을 찾아다니며 기금을 모아 도내 최초로 학교숲을 만든 일도 자랑했다.

교직에 몸담는 동안 수필집 세 권을 발표했다.

교장의 임기는 4년, 한 번 연임을 했는데, 정년까지 8년이 남았다. 평교사로 5년 근무하던 중 영송학교에서 교장직을 제안했다.

영송학교 학생들은 모두 발달장애인들이어서 한 반 인원이 6명을 넘지 않는데. 수업에는 교실마다 교사 1명과 보조원 1명이 필요하다. 학생이 180명인데 교직원이 140명이다.

특수학교 경험이 없는데, 교장에 부임했으니 처지가 난감했다. 그래서 취임 직후 집에서 손수 거둔 감귤 140상자를 트럭에 싣고 가 직원들에 나눠주며 “나 좀 잘 봐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조직이든 변화와 쇄신이 없으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교사들이 장애 학생들 가르치느라 수고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사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연말에 학생들에게 옷도 선물하고 산타복장을 하고 선물도 나눠졌다.

고 선생은 “아이들은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진짜 산타할아버지로 생각한다”며 “아이들도 부모들도 모두 기뻐했다”고 말했다.

시민의책읽기위원회에 대한 의욕도 조금 내비쳤다. 특히, 작은도서관, 북카페 등과의 유대를 통해 책읽기 사업이 조금 더 시민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도서선정도 오래된 책 보다는 출간된 지 2년 이내인 것들 가운데 양서를 선정해 소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리고 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위원들이 국회박물관 등에 견학을 다녀보고 역량을 높이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귀포신문>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일단 리더는 기존의 오래된 틀을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라며 “낡은 틀을 바꾸지 못하는 리더는 조직을 망치는 자”라고 했다. 정말 혁신의 몸부림이 절실하다고 느끼던 차여서, 충고가 가슴에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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