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설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 동안 저로서는 생애 가장 큰 변화를 맛보았습니다. 그 큰일이란 다름 아닌 손녀가 태어나면서 외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2월 4일이 출산 예정일인 딸의 다급한 전화를 이미 한 주 전에도 받았던 터라 ‘한밤에라도 전화하면 새벽 일찍 공항으로 가서 첫 비행기로 가마. 만약 깊은 잠 들어 전화 못 받으면 문자라도 남겨놔라. 가마. 어떻게 해서라도 그리 가마. 비행기 편 없으면 바다를 헤엄쳐서라도 너에게 달려가마. 아빠도 있고, 김서방도 옆에 있는데 걱정말고...’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작 옆에 있어주지 못 하는 안타까움과 걱정을 그렇게라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면서 딸을 안심시켰습니다.

전화벨이 새벽에 울리면 어쩌나...어떻게 하나...정말이지 연휴라 비행기표를 못 구하면 어쩌지...하면서 하루하루가 애간장이 녹아나는 것은 이곳이 제주여서만은 딱히 아니었을 겁니다. 입덧하는 임신 초기에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하면서 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딸아이와의 통화를 끝내면서 어미된 마음으로 가슴이 아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점점 무거워오는 몸으로 태교여행이랍시고 사위와 함께 곁에 와서 지냈던 11월의 일주일간은 노력봉사(?)랍시고 먹을 것이며 볼거리며 이것저것 다 챙겨주고, 직접 말린 귤칩이며 잡채며 빵이며 여행보따리를 꾹꾹 눌러 바리바리 싸보내면서 ‘밥 잘 챙겨 먹고...’ 당부하면서 보낸 것이 짝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행여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혹여 불편한 곳은 없는지 다리가 부었다고 하면 밤새 옆에서 주물러 주고 싶은 심정으로 ‘그러게 어쩌다 그리 무리했대, 조심하지 않고...’하는 타박을 하면서도 마음이 짠해서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마음 한켠으로 치우고는 ‘그 때 그 무렵, 우리 엄마가 지금 내 마음이었겠다’하면서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어찌 그리 절절하던지요. 그리운 마음으로 엄마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 달을 보냈는데, 열 달이 지나갔는데...

동생 같은 후배가 서귀포치유의 숲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금요일 늦은 밤에 와서 연휴 시작인 토요일에는 후배가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일할 예정인 치유의 숲 일대도 다니고, 일요일엔 그 좋다는 올레 7코스 외돌개를 걸으면서도, 선녀탕에 휘몰아치는 호쾌한 겨울파도를 보면서도 안테나는 딸을 향해서 몽땅 열려 있었지요.

월요일 아침 8시경, ‘엄마, 이게 산통인가봐. 병원 가야겠어. 연휴라 담당 쌤이 없는데 어쩌지?’하는 전화를 받고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바로 비행기편을 알아보았지요. 이미 구정 당일과 이튿날은 표가 아예 없음을 알았기에 ‘에구구, 오늘이라서 다행일세! 그나마 태어날 아기가 이 상황을 아나봐!’하면서 부랴부랴 치성을 드리는 심정으로 목욕재계하고 제주공항으로 내달았지요. 아마 2년간 수없이 왔다갔다 달린 평화로 중 가장 긴 ‘공항 가는 길’이었을 겁니다.

후배는 ‘주인 없는 집에 안방을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지, 그럴 수는 없어’하면서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 트렁크를 끌면서 ‘제주에서 다만 한 시간이라도 더 있겠다’면서 공항 근처 어디 갈만한데 없나를 열심히 검색하면서 대기의자에 앉아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더군요. 잘 다녀오라고.

집에 도착하고도 긴(?) 시간을 보내고는 2월 5일 아침 7시 24분. 만 하루를 넘기며 진통하면서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제 딸은 양수가 터졌는데도 결국 자궁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제왕절개로 딸을 분만했습니다. 꼬물거리는 손녀를 유리벽 너머로 보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면서 어렵게 엄마가 된 딸이 대견하고 또 대견합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출산의 과정이야 저마다 조금씩 달라도 여성들에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과 연대감을 주는 것처럼 저 역시 손녀를 보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의무와 책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오늘도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휴대폰으로 마주하는 손녀를 보면서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그러면서 우리 외할머니가 강보에 싸인 제 딸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면서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아이구, 못 났다. 어찌 이리 못 났을까? 아이구, 못났다, 참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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