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짧은 여행 ③]김해 봉하마을과 부산 흰여울마을

봉하마을에서.(사진은 이은화)

어김없이 찾아온 여고 동문체육대회는 친구들과 끊임없이 대화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해마다 떠나던 동문끼리의 여행을 1년 쉬었던 터라 즉흥적으로 1박 2일의 부산투어는 쉽게 쉽게 의기투합으로 결정됐다. 여행길마다 경유지로 거치며 가던 부산이라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이 늘 고민이다. 3년 전에도 여고 동문끼리 함께했던 김해 봉하마을을 다시 가보자고 한 친구들의 마음속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10주년을 우리 방식대로 추모해야 옳기 때문이리라!

한 사람의 고향은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에 머문 곳이 아니라 그의 부모가 살았고 자기 자신도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한 사람의 사회 문화적 원형을 만든 곳이다.

세상을 바꾸는 삶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기까지, 여전히 남아있는 욕망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힘겨운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준 고향 봉하는 여전히 한적하고, 논두렁만 끝이 없는 시골마을 그대로였다.

유명해진 만큼이나 평일이어도 찾아오는 이들도 많고 기념품 코너 또한 더욱 세련되어지고 있었다. 3년 전, 봉하마을을 찾았을 땐 대통령이 늘 걸었던 봉화산 ‘마애불’과 ‘정토원’, 사자바위를 지나서 숲길을 걸었었다. 어떤 마음이셨을까 하며 따라 걸었었던 숲길을 쳐다보기만 하고 노무현 생가와 묘역 주변을 맴돌며 새롭게 들어설 대통령 기념관을 상상해 보았다.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봉하 막걸리와 비빔밥으로 첫 끼니를 해결하니 몸과 마음이 꽉차왔다. 기념관이 새로 지어지면 ‘다시 찾아오마’ 하고 부산행이다.

영도대교 끝자락 영선동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절벽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흡사 낭떠러지를 연상케 하는 산기슭인데 삶의 둥지를 틀어쥔 “흰여울마을”이라는 곳, 찾아가는 곳이 맞는지 안 맞는지 행여 지나칠 뻔한 곳을 가보았는데 모두를 탄성케 하는 바다와 영도대교 그리고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곳은 영화 “변호인” 촬영지였다.

영도 흰여울마을에서.

봉하에 이어 다시 노무현을 기억하는 곳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더 많이 그 분의 삶을 공감해 낼 수 있었던 터라 가파른 곳 같았지만 잘 내려갔다. 폭 1미터 남짓의 가느다란 골목길과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 공동 화장실, 공동 수도를 쓰고 있는 집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했다.

담장에는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 생의 마지막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세상을 뜬 배우 김영애의 대사가 새겨져 있었다. 하얀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예쁜 바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타일의 장식도 있고 오래된 주택이 카페로 단장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아득하게 보이면서 더 가보고 싶은 산책로라고 확신했지만 지친 일행들은 다 완주하기에 버거운 몸 상태이었음으로 아쉽지만 골목길을 걷는 데에 만족했다.

흰여울마을이 영도에 있다면 달맞이 길은 해운대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벚나무와 송림이 울창하게 들어찬 호젓한 오솔길이었다. 둘이 걸어도 좋고 여럿이 함께 걸어도 좋고 녹음이 짙어 오랜 시간 앉아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해월정이라는 팔각정에 올라앉아 바다에 익숙한 제주사람들의 눈이지만, 빌딩사이 부산 바다는 또 다른 특색임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다의 특별한 차이보다는 정박한 대형선박 이런건 제주에선 쉽게 보이지 않으니까.

부산여행이면 화려한 야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달맞이길 정자에서.

어두우질수록 점점 밝아지는 고층아파트의 불빛이 조명이 되고 호수 같은 바다에 다시 불빛이 반사되어 노안으로 흐려지는 눈 주위를 밝혀주면 여행의 끝자락을 펼치며 친구들은 끝도 없는 수다 삼매경이었다. 셀카에 취해있던 예년의 여행길이었다면 각박하고 몰인정해가는 현실 속에서 타인과 공감하며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에 부합되는 길이란 걸 깨우치는 봉하로부터 시작된 이번 여행길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깊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삶의 방향성과 결의 지독한 일관성을 떠올리는 6월, 우리들의 얼굴을 액자 속에 꼭 담아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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