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날 특집 1]청정 물속과 맑은 공기, 때 묻지 않은 무인도가 주는 선물

정부가 지난해 도서개발촉진법을 제정했다. 법률은 섬들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8월 8일을 섬의날로 지정했다. 이에 오는 8월 8일이 제1회 섬의날이다. 서귀포신문은 섬의날을 맞아 제주도의 부속섬들을 조명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트 타고 지귀도 가는 길.(사진은 장태욱 기자)

어릴 적 별다른 놀이터가 없던 시절, 우리는 갯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무더운 여름날 물속에서 멱을 감을 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해지면 남쪽 바다에 불빛 한 점, 지귀도 하얀 등대에 불빛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면 주변에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당시에 지귀도 등불을 바라보며 동요 ‘등대지기’를 수없이 불렀지만, 섬은 등대지기도 없는 무인도다. 그래서 그곳을 다니는 정기 뱃길도 없다. 태어나 자라면서 줄곧 보며 살았는데, 여태 한 발짝 내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지귀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뱃길이 열렸다. 정기 여객선은 아니고, 하효항에서 출발해 섶섬과 지귀섬 해역을 둘러보는 유람선이 도입됐다. 배의 바닥이 투명한 유리라서 바다 밑도 시원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1회 승선에 2만 원인데, 마침 여름 휴가철을 맞아 1만5000원으로 할인행사도 하고 있다. 지귀도야!! 내 너를 이리 쉽게 만날 줄이야.

글라스 보트(Glass Boat) ‘엠에스 크루즈(MS cruise)'에 몸을 실었다. 하효항 방파제 안 계류장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방파제 밖을 나오니 너울이 예상보다 높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노을이 뱃머리에 부딪칠 때면 놀이공원 바이킹을 타는 것과 비슷한 스릴이 있다.

보트 선장.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보트는 물살을 가로질러 5분 남짓 달리더니 지귀도 인근 연안에 당도했다. 물살을 가로지르는 동안 배는 위아래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등대가 있는 북쪽 연안에 도착하자 울렁거림은 잦아들었다. 섬이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보트의 선장이 북쪽 연안에서 잠시 바람과 파도에 배를 맡겼다. 지귀도 연안 바다 밑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보트 바닥 유리를 통해 물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짙붉은 연산호들이 가끔 보이고, 그 주변에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돌에 붙어있는 소라와 전복, 성게 등도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등대 인근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도 더러 눈에 띈다.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니 크게 오염이 되지 않아 청정하다. 이런 곳에서 낚시를 하는 저들은 아마도 물고기보다는 맑은 공기를 낚고 있을 게다.

지귀도 등대. 어릴적 내게 그리움을 남긴 존재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갯바위에서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물속 풍경. 연산호 주변을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지귀도는 서귀포 동남쪽 9Km 지점에 위치하고 면적이 8만7934㎡를 달한다.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산 146-164번지 19필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섬에도 제주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설문대할망 전설이 있다. 설문대할망은 체구가 얼마나 컸던지, 백록담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다리를 뻗으면 한쪽 다리는 지귀도에 닿았고, 다른 한쪽 다리는 제주시 앞 관탈섬에 닿았다고 전한다. 옛 사람들이 지귀도를 제주의 남쪽 한계로, 관탈섬을 북쪽 한계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제주목사를 지낸 병와 이형상이 1704년에 지은 <남환박물(南宦博物)>에는 지귀도에 관하여 섶섬, 새섬 등과 함께 "모두 홍로 고현의 가까운 해안에 있는데, 자그마하다. …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기록됐다. 18세기 무렵 이 섬에 사람이 살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37년 초여름에 이 섬을 다녀간 미당 서정주는 <화사집>에 "지귀(地歸)는 제주남단(濟州南端)의 일소도(一小島), 신인(神人) 고을나(高乙那)의 손일족(孫一族)이 사러 맥작(麥作, 보리농사)에 종사(從事)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귀도에서 만난 여인을 소재로 '고을나(高乙那)의 딸'이란 제목의 시를 짓기도 했다. 미당의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이 섬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보리를 재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주문화방송이 발간한 '제주무인도학술조사보고서'에도 당시 이 섬에서 보리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있다.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고 하던 1930년대 초반에 서귀읍 하효리 오두길 씨 가족을 포함하여 몇 가구가 합심해서 이 섬을 개척했다는 기록이다.

이들은 태풍 피해를 우려하여 여름 농사는 짓지 않다가, 겨울의 보리농사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이 섬의 보리수확이 본도보다 보름 이상 앞섰다고 하니 보릿고개의 기간도 그만큼 단축됐다.

우리가 탔던 글라스 보트.(사진은 장태욱 기자)

지금은 지귀도에 낚시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강태공들과 해산물을 채취하러 오는 해녀들이 이 섬에 사람의 채취를 남기고갈 뿐이다. 지귀도가 위미리에 속하므로, 지귀도 해변의 해조류와 어패류의 수취권은 위미1리 어촌계의 것이다. 

보트승선 문의는 (주)쇠소깍크루즈  (064)733-0251 또는 733-0252

<계속>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