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제대로 이해하기④]홍콩시위는 미중 체제갈등 촉매제

이용석 씨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제주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국어와 영어 통역과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용석 씨가 외신을 기반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한 기사를 보냈습니다. 독자들이 국제정세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용석 씨의 원고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100만 명 넘는 홍콩 시민들이 참가학 있다.(사진은 KBS 뉴스 화면 갈무리)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휴전 후 격화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매스컴은 벌써 세계 금융시장이 경기침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설레발이다. 11주차에 접어든 홍콩 시위는, 무력진압 여부가 관심사가 되면서, 드디어 트럼프가 무역협상에 홍콩시위를 연계시키는 발언을 했다. 각종 불확실성 앞에서, 중국 정부는 과연 홍콩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할 것인가. 트럼프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정부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홍콩 시위가 10주차에 접어들면서, 설익은 무력진압설이 고개를 들었다. 8월 16일 세계적인 홍콩 대부호 리지아청(李嘉诚)은 홍콩 대다수 매체에 폭력(暴力)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광고를 낸다. 그의 광고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黄台之瓜,何堪再摘(황대지과, 하감재적): 궁궐 밑에 열린 참외, 하나씩 따면 덩굴만 남겠네(역자). 중국 정재계에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는 홍콩 대부호 리지아청은, 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국면에서, 황대지과(黄台之瓜) 고사를 인용하여 폭력을 반대한다.

황대지과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測天武后)의 둘째 아들 태자 이현(李贤)의 시(诗)에서 유래한다. 냉혹한 측천무후는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첫째 아들 태자 이홍(李弘)을 독살한다. 형에 이어서 태자로 책봉된 이현은,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에 의해서, 언제 제거될 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시로 표현했다. 궁궐(권좌)에 열린 참외(아들)를 하나 둘 씩 따다보면 결국 궁궐에 덩굴(어머니)만 남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리지아청의 광고를 두고서 홍콩 시위를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이 재미있다. 먼저, 중국 대륙 매체들은 이미 홍콩 시위를 폭력시위로 규정하고, 당연스럽게 리지아청의 광고를 폭력시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와 다르게,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리지아청의 광고는 폭력을 반대한 것이지, 시위를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참외를 홍콩, 덩굴을 중국 정부로 해석하면,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을 반대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현지 시간 8월 18일, 트럼프는 일상처럼 문답을 통해서 기자들에게 홍콩 시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문답 시간대는 오후 4시 반 경이므로, 18일 예정된 홍콩 시위가 이미 진행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모두 발언에서 홍콩 사태가 인도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길 바라며,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역협상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힌다.

위와 같이 종전과 다르게, 홍콩 시위를 무역 협상에 연계시킬 수 있다는 트럼프의 모두 발언에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질문한다. 즉, 홍콩 시위는 중국 내부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서 트럼프의 심경이 변화한 이유를 물어본다. 이에 대해서, 트럼프는 자신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천안문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한다면, 대통령인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완곡한 입장을 피력한다.

이어서, 어떻게 보면 무례한 기자의 질문이 나온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Do you think democracy matters?)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 트럼프는 전혀 격분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설명한다. 자신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홍콩 시위 대표들과 대화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자신은 미국 국민의 시각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And I respect, most importantly, the views of the people of our country), 시주석이 만약 무력진압을 한다면 협상이 아주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And I think it would be much harder for me to sign a deal if he did something violent in Hong Kong).

필자는 홍콩 시위를 미중 무역전쟁이 체제 갈등이라는 본질을 향해서 직행하게 하는 촉매제로 본다. 애초에 금방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무역 갈등으로 보였던 것이, 화웨이 사태를 통해서 과학기술 패권 구도를 노출했다. 또한,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미중간에 이미 금융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편, 중거리 핵전력 협정(INF Treaty) 탈퇴에 이은 미사일 실험 및 80억불 상당의 F-16 대만 판매는, 바로 미국이 중국을 군사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공표한 것과 다르지 않다. 국내 일부 언론은, 미중 무역전쟁을 보도하면서, 이러한 일련의 유기적인 연쇄반응에 주목하기 보다는, 트럼프의 말실수와 변덕과 해프닝에 지면을 할애하고, 번역투를 빌어서 가책없이 트럼프를 비난한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홍콩 시위를 계기로,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 문제를 조기에 등판시켰다. 세계인들이 홍콩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는 광경을 보게 되면서, 미국은 국제 사회에 굳이 가치관 프레임을 전개할 필요가 적어진 것이다. 또한,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작금의 미중 무역 전쟁이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 프레임에서 공산당 정권인 중국의 편을 들어줄 국가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 정부가 홍콩을 무력진압한다면, 홍콩의 기존 체제를 보장하는 중국의 약속, 즉 일국양제(一国两制)는 허울좋은 사상누각이 되고, 미국의 금융 제재는 국제 여론을 바탕으로 탄력을 받게 된다. 국제 여론 악화에 따른 국제무대 고립, 일국양제 붕괴가 초래할 대만의 정통성 부각을 포함하는 나비효과 및 중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미국의 본격적인 금융 제재 등, 홍콩 시위를 무력진압하는 대가가 너무나 크다. 현재 시점에서도 홍콩 시위는 이미 중국 정부에 진퇴양난의 난제가 되고있지만, 만에 하나 무력진압이라는 방아쇠가 촉발할 수 있는 폭발력은 측정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보면, 중국 정부는 직접적인 체제 위협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한 홍콩을 무력진압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러한 객관적인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격하게 이데올로기 프레임을 추진하기 보다는 서서히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언론 재벌 지미 라이(Jimmy Lai)의 마이크 펜스(Mike Pence) 미 부통령 면담, 하나의 중국과 어긋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 등, 미국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이러한 미국의 방향성과 미국의 대통령이 무관하겠는가. 필자가 보기에, 트럼프는 협상을 진행하는 사업가처럼 쓸데없이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을 뿐이다. 그의 가치관과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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