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떠올리는 기자를 향한 지상명령

늙은 기자의 수첩은 오늘의 기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많은 과제를 전한다.

오인문 작가의 <노기자의 죽응>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1966년 ‘문학’지에 처음 발표한 작품인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발표된 현대소설이어서 제목도 잘 모르고 작가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책장에 꽂힌 삼성출판사 한국현대문학전집(1978)에 들어있어서 접할 수 있었다.

작품은 ‘인간자격고시’, ‘유영’, ‘노기자의 죽음’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연작소설이다. 그 가운데 ‘노기자의 죽음’은 월남전 종전기자로 떠나 주검이 되어 돌아온 박수득 기자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는 기자생활 10년이면 대부분 부장을 달던 때다. 그런데 경력 20년의 박 기자는 “데스크나 지키고 앉아서 감투의 그늘에 살 수는 없다”며 모든 발령을 거부했다. 그리고 베트남 전장을 떠났다.

박 기자는 베트남 전장에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는데, 박 기자의 몸을 관통한 총탄이 베트공의 것인지, 한국군의 것인지, 미군의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현지 취재활동이 어떠했는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점들은 그의 영결식에 모인 기자들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전장에서 기자들은 보통 당국의 브리핑을 보도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박 기자만 유독 전투 현장에 참석해 포탄이 쏟아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사에 담았다. 그는 전장에서 북한군 게릴라를 취재하기 위해 요새를 직접 방문도 했는데, 그만 붙들려 북한군과 주먹질하다 풀려난 웃지 못 할 얘기도 나온다.

그의 삶을 속박했던 친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박 기자는 4ㆍ19 학생 데모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친구 김현구가 학생 시위대의 맨 앞에서 섰다가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했다. 박 기자는 친구의 시신을 업고 나왔다는데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삶을 옥죈다. 박 기자는 스스로의 죽음의 장소를 찾기 위해 범인과는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품 피로 붉게 물든 취재수첩에 적힌 「명령 3장」은 치열한 기자정신을 보여준다. ▲끝까지 파라. 끝가지 보라. 끝까지 가라 ▲피를 흘리고 싶지 않거든 땀을 흘려라 ▲네 운명의 선장이 될 수 없을 때에는 그 배를 파괴하라 등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떠날 결심에 관한 메모도 있다.

‘…나는 기어이 베트남으로 떠나야 했다. 그곳엔 피가 뛰어나는 긴장과 고통이 있고 20세기의 지성과 무력과 비둘기의 눈짓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원시의 몸부림이 있다. 나는 그 속에 파 들어가 찾아보리라. 그리고 이겨내고야 말리라. 몽블랑을, 에베레스트를’

오래된 작품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소설 속 박 기자가 스스로에게 남겼다는 「명령 3장」을 다시 각인하기 위해서다. 그 가운데 ‘끝까지 파라. 끝가지 보라. 끝까지 가라’나 ‘피를 흘리고 싶지 않거든 땀을 흘려라’는 말은 평생 각인해야 하는 기자를 향한 지상명령이다.

MBC 이용마 기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소식까지 들었다. 기자로 사는 게 무겁고 부끄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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