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親BOOK)회담 2] <서양미술사> 카페

책모임 테이블(사진은 장태욱 기자)

입춘보다도 먼저 와버린 봄, 잔디 위에 앉아 수다를 떨기 좋은 아침이다. 책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는 소식에 지난달 30일 혁신도시에 있는 C커피숍을 찾았다.

클럽의 이름도 격식도 없다. 그저 그동안 화가들이 남긴 자취에 관심이 있어, <서양미술사>(E. H 곰브리치, 예경)를 놓고 몇 개월째 씨름하고 있다. 작년 6월부터 책을 함께 공부했다니 모임이 결성된 지 벌써 7개월째다.

모임의 리더는 커피숍의 주인장인 이승규 대표다. 제주로 이주한지 7년째라는데, 이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모임이 있는 시간이면, 오전엔 커피숍 앞에 휴업 안내표지를 세운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잠시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는데, 손님들에게 오후에 오실 것을 권한다. 책모임이 산만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이승규 대표 외에도 노은영, 신은실, 이은영, 용희수 씨 등이다. 주로 이승규 대표가 설명하면 나머지 참가자들이 느낌을 얘기하거나 질문한다. 이은영 씨가 간식으로 빵과 케익을 준비했다. 테이블 위해 촛불이 타고 있어서 모임에 정감이 더해졌다.

<서양미술사> 책모임 현장(사진은 장태욱 기자)

이날 공부할 내용은 르네상스 미술이다.

이날 카리바조, 루벤스, 반 다이크, 벨라스케스, 할스, 렘브란트 등 다양한 화가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건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비교하는 대목이다.

이승규 씨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동시대에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다. 루벤스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인데 외교관을 지낼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취를 이뤘다. 갈등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을 중재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이용했다. 유명인사인 만큼 그림 주문이 쇄도했는데, 루벤스 스쿨을 통해 수요를 감당했다.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반면, 렘브란트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돈 문제에 시달렸다. 주문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자신의 취향대로 그렸다. 고객과 불화가 잦았으니 명성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용희수 씨는 “루벤스에 대해 듣고 있으니 마치 백종원 씨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여러 그림 가운데 카리바조의 ‘의심하는 토마’가 특별히 관심을 끌었다. 신과 교회를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고 살던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중세교회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예수의 제자 토마가 예수의 몸에 난 창 자국에 손을 대는 장면. 근대 이성은 이렇게 의심과 반항을 통해 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다.

이승규 대표는 그림과 관련해 “중세는 금욕이 일상화된 사회였는데,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릴 때도 목욕을 했을 정도였다”라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카라바조는 ‘의심하는 토마’를 통해 예수를 희화화했다”고 말했다.

벨라스케스의 ‘세비아의 물장수’도 인상적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물장수는 늙어 얼굴에 주름이 많다. 가난을 상징이나 하듯 몸에는 찢어진 망토를 걸쳤다. 하지만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통해 보는 이들은 물장수가 상남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들고 다니는 토기 항아리 또한 한 손으로 기 어려울 만큼 크다. 중세 예술가들이 성직자와 귀족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면 벨라스케스는 가난하고 천대받던 하층민들을 강건하게 표현하면서 기존 체제에 균열을 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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