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雲鳥樓)라는 저택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지었다고 전한다.

운조루가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매일 행랑채에 백미 두가마니반이 들어가는 뒤주를 놓고 쌀을 담아두었다. 뒤주의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다른 이도 열 수 있다고 특별히 써 놓아, 누구든 필요하면 뚜껑을 열도록 했다.

그리고 부엌의 굴뚝을 낮춰, 밥을 짓는 연기가 멀리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배고픈 이들이 연기로 인해 서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은 운조루가 200년 전 조선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등 이념이 대립하는 기간에도 운조루가 온전히 보존된 배경에는 류이주와 그 후손들이 이웃을 배려하며 살았던 생활양식이 있었다고 한다.

류이주와 그 가족들의 선행보다 더 아름다운 나눔이 서귀포에 있어 화제다. 홀로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모교인 서귀포여중에 장학금을 쾌척했다는 이유순 할머니의 선행에 관한 일이다.

돈이 많아서 장학금을 전달한 것도 아니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홀로 살았다. 매일 클린하우스에서 쓰레기를 정리했고, 공원에서 풀을 뽑았다. 클린하우스 지킴이로, 공공근로자로 활동하면서 10년 동안 어렵사리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미련 없이 모교에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액수가 무려 5000만 원이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듣는 것도 사양한다. 어린 후배들이 있어 행복하다며, 이후에도 돈이 모이면 어린 학생들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참으로 어린 아이와 같이 선한 마음이다.

이 할머니는 10대 소녀시절에 이미 가난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기거할 집이 없어 친구의 집에서 생활했고, 객지에서 식모살이도 해야 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이 할머니는 가간의 고단한 삶 가운데도, 눈물을 빚어 시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향토시인으로 통한다. 가난과 결핍, 고뇌 속에서 빛 같은 빛 같은 시를 건져 올렸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삶이 어렵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이 가혹한 아픔을 느낀다.

미국의 사례이간 하지만, 코로나19로 성적이 우수한 저소득층 가정의 청소년들이 대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하고 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독립보다는 가족과 사는 것을 택하고 있다고 전한다. 만일, 대학을 진학하더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먼 거리에 있는 대학보다, 집과 가까운 곳을 선택하고, 4년제보다는 2년제를 선택한다.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내 주변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있고, 가난 때문에 좌절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본인이 겪었던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평생 모은 돈을 기꺼이 내놓는 천사 할머니도 있다.

연말이 다가온다. 시민들이 더 넉넉해져야 하는 이유가 우리 주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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