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제주인은 현대사의 굴곡을 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다.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 해방, 제주4‧3 등 역사의 소용돌이가 제주섬에 휘몰아칠 때, 수많은 제주인은 생존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2017년 기준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은 귀화자를 포함해 81만8626명에 달한다. 그중 재일 제주인이 12만3250명으로, 전체 재일 한인의 18.4%에 달한다. 제주의 인구가 전국의 1% 남짓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18.4%는 매우 높은 비율이다.

조선이 일본에 합방되자 맨 먼저 해녀들이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잠수기업자들이 제주에 진출하면서 도내 어장이 황폐화됐고,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 상품가지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많은 제주인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전쟁이 발발하자 1920년대 일본은 물자생산으로 특수를 누리며 신흥공업국가로 성장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공업이 활성화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그 부족한 일손을 조선인들이 채웠다.

당시 많은 제주인들이 일터를 찾아 일본으로 떠났다.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제주에서 오사카로 이주한 도민은 5만명 정도였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했고, 일본 공업은 활기를 잃었다. 일본과 제주를 오가는 뱃길도 끊겨 많은 조선인들이 귀국길에 올랐다. 그 와중에 제주4‧3과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제주섬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많은 제주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시 일본 밀입국을 감행했다.

재일 일본인들은 현지에서 차별과 모독을 감내하고 생활했다. 저임금 속에서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공동체문화를 지키며 살았다.

재일 제주인들은 고향사람들이 가난에 시달릴 때,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교량가설, 도로 포장, 상수도와 전화 가설, 마을회관 신축 등 고향이 큼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재일 제주인이 고향에 남긴 발자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감귤묘목 보내기 운동이다. 제주도민들이 감귤산업으로 부흥을 꿈꿀 때 재일 제주인들은 고향에 감귤묘목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이들이 1965년부터 1979년까지 보낸 묘목이 347만 주에 달한다니, 이들의 헌신으로 제주섬은 70년대 대학나무의 신화를 이뤘다.

그런데 그 고난의 1세대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기에 일본에 정착한 많은 이들은 이미 돌아기시고 없다. 남은 이들도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형편이라고 하니, 제주도민들이 서둘러 답해야 할 차례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25년까지 재일제주인 1세대의 나눔 정신을 계승하고 보은을 실천할 뜻을 밝혔다. 재일 제주인을 후원하기 위한 도민 공감대를 조성하고 재일 제주인의 실태를 조사해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일회성 캠페인으로 말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재일 제주인을 적극적으로 찾아 도움을 줘야 한다.

재일 제주인을 질병과 가난에 방치하는 일이 독립군 가족을 가난에 내모는 것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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