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성산읍 오조리에 문을 연 동남국수

좌측 사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제면용 밀가루-제면기-보관 중인 국수-국수 건조과정 등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좌측 사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제면용 밀가루-제면기-보관 중인 국수-국수 건조과정 등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국수마니아로서 꼭 한번은 찾고 싶었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만든 국수들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는 과정에서도 여태 도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애향심 때문이 아니라 맛과 식감 때문에 ‘동남국수’(회사 이름은 동남제면, 대표 강성력)만 고집하는 소비자들이 도내에 많은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22일 오전에 강성력 대표와 통화 연락이 닿아 여간 반갑지 않았다. “이런 국수를 먹기만 할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방문해서 만드는 과정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더니 “국수가 밀가루와 물과 소금 넣고 반죽해서 만드는 것이라, 다 거기서 거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꼭 한번은 공장을 보고 싶다”고 우겼더니 “오후에 찾아오라”고 했다. 그렇게 방문이 성사됐다.

공장 한 곳에는 밀가루 부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반죽을 하고 면을 뽑아내는 제면기가 있고, 방에서는 후끈한 바람에 국수가 마르고 있었다. 동남제면에서 만드는 국수는 소면과 중면, 대면 등이다. 면이 만들어지려면 반죽-제면-건조-절단-포장 등을 거쳐야 한다. 반죽과 제면에 하루, 건조에 이틀, 절단과 포장에 이틀 등 5일 사이클이다.

한 번 면을 건조하는 양이 약 4000kg 분량이다. 포장은 1kg 단위로 하는데, 한 상자에는 1kg국수 20봉지씩 포장해 보관했다가 대리점에서 주문이 오면 납품을 한다.

강성력 대표는 1973년에 국수업을 처음 시작했다. 젊은 시절인데, 먹을 거라고는 조나 보리가 전부였다. 막노동으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국수를 사 먹었는데, 조‧보리와 달리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 좋았다.

마침 아는 동생이 국수공장을 하다가 중단하고 기계가 놀고 있었다. 당시에 중고 제면기를 3만 원에 팔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동생에게 제면 기술을 배우는 조건으로 7만 원을 주고 기계를 샀다.

그 길로 제면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도내에 국수공장이 약 50군데에 있었다. 큰돈을 벌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그냥 굶지 않을 목적이었다. 아내와 둘이 국수를 만들면서 그런대로 잘 운영됐다.

그런데 70년대 후반에 어려운 일이 닥쳤다. 도내 국수업체 한 곳이 국수를 만들어 헐값에 팔기 시작했다. 다른 업체들을 몰아낼 심산으로 덤핑공세를 펼친 것인데, 그 일로 도내 제면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강성력 대표도 그 업체와 출혈경쟁을 펼친 결과, 예전에 모아둔 돈도 모두 소진했고, 땅까지 팔아도 부도를 피하지 못했다. 1982년의 일이다. 슬하에 2남3녀가 있는데, 부도를 맞은 통에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여전히 후회가 된다.

이후에 어렵사라 제기에 성공해서 공장도 새로 짓고, 설비도 새로 갖췄다. 하지만 라면과 여타 인스탄트 식품이 줄이어 나오고, 대기업들이 업계에 진출하면서 영세한 업체는 제면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강성력 대표. 뒤에 있는 게 강 대표가 직접 운전하며 국수를 배달하는 트럭이다.(사진=장태욱 기자)
강성력 대표. 뒤에 있는 게 강 대표가 직접 운전하며 국수를 배달하는 트럭이다.(사진=장태욱 기자)

강성력 대표는 “현재 도내에 제면공장은 두세 군데 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사장이 직접 일을 하고, 가장 비싼 재료로 질 높은 국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살아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제면업은 사장이 스스로 안하고 전부 종업원 손으로만 하면 먹을 게 없는 사업이지만, 내가 음직이면 나와 집사람 먹을 정도는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나이가 여든 둘인데 3톤 트럭 운전하며 손수 국수배달 나간다”고 말했다.

또, “밀가루 20kg 한 부대에 가격차가 7000원이 난다. 7000원 비싼 것과 7000원 싼 것을 썼을 때 맛 차이가 크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싼 거 쓰고 싶지, 비싼 거 쓰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동남국수는 재료가 비싸기 때문에 제품 가격도 비싸다. 대기업이 만든 국수는 1kg 한 봉지 가격이 약 1800원인데, 동남국수는 2850원이다. 가격차가 커도 동남국수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여태 살아남았다.

막내사위가 일을 배우며 강 대표를 돕고 있다. 재작년까지는 외국인 노동자 4명을 고용했는데, 작년부터 코로나19 여파로 국수소비가 크게 줄어 지금은 두 명만 쓰고 있다. 국수는 대부분 도내 시장에 판매되는데, 더러는 외지에서 주문하는 경우는 택배로도 판매한다.

강성력 대표는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어서인지 국수 소비가 확 줄었다”라면서 “이게 빨리 끝나야할 테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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