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의 선구자 나비박사 석주명(63)

한국조폐공사의 석주명 인물메달 (사진=윤용택 제공)
한국조폐공사의 석주명 인물메달 (사진=윤용택 제공)

시인 김광협(1941~1993)은 1965년 6월 서울대 대학신문에 석주명을 모델로 한 ‘어느 곤충학의 죽음’이라는 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부친 김남운(1920~1998)은 석주명과 함께 제주도시험장에 근무한 바 있다. 시인은 유아시절 보았던 석주명과 따님을 어렴풋이 추억하면서, 나비밖에 모르던 곤충학자가 분단 이데올로기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날 아침 보내온 딸의 서신은 옥색 종이에 씌어 있었다. 아래 밀밭을 거쳐온 터이라 행간에 밀밭 내음새가 물씬 배어 있었다. 그 때도 그는 과수원집 주인네 옆방에서 조반상에 올라온 산나물을 씹으면서 어제 잡은 네 마리의 나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리 상자 속에 든 네 마리의 나비는 이 반백의 곤충학자를 몹시 즐겁게 해주었다. 그들이 연한 몸둥아리를 움추리고 날개를 쉬임없이 파닥여 어떤 것은 은가루를 뿌리며 날아오르는 것을 보면 더 없이 황홀하였다. 딸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는 빙그레 웃었다. … 그는 채집일기장 한쪽에 딸의 편지 속 이야기를 메모하였다. 「아이들이나 노랑나비 배추흰나비 오색점백이나비를 잡고싶어 하는 것이지, 아버진 다 늙구선두…. 곤충학자면 단줄 아시나 바. 그 과수원 아들이 뭐라 그러는지 알아? 너의 아버지가 막 우리 능금나무 사이를 후벼댕겨서 꽃을 다 떨어버렸기 땜 올엔 능금이 많이 안 열릴 거래. 하지만 나한텐 내가 먹구싶은대루 다 주기로 했지. 아버지, 빨랑 집으루 와요. 엄마가 그러는데 요새 그 능금나무 밭 뒷산에 공산당이 산대….」 그는 오늘 잡은 한 마리 검정 갑충의 분비액을 냄새 맡아 보았으나 거기에서도 꽃향기 밖에는 없었다. 그는 인간의 식별력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비웃듯 벌떡 일어서서는 아침에 온 딸의 편지를 들고 과수원 주인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일본판 ‘병충해구제법’에서 원색 해충도를 보고 있었다. … 밤이 큰 강의 지류를 헤매이듯, 아니면 만상을 붙들고 간구하듯 그의 옷섶에 와서 매달렸다. 이 때 파수견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으르며 또 발을 구르며 짖어대었다. 그는 움찔하고 놀랐다. … 그는 전에 한번도 보지 못했던 방문객들을 맞이하였다. 그는 어떨 결에 딸이 보내온 옥색 편지지를 쪼각쪼각 찢어버렸다. 그리고 과수원집 주인과 함께 이 야반삼경에 찾아온 방문객들의 앞장에서 과수원의 샛길을 빠져 검은 밀밭 길을 걸었다. 이 방문객들의 겨드랑이에도 검은 총신이 끼어져 있었다. 밀밭 내음새가 너무 진하여 그는 정신을 가눌 수 없었다. … (서울대 대학신문, 1965. 6. 21)


한참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잊혔던 석주명이 1968년 ‘제주도수필’을 시작으로 ‘한국산 접류의 연구’, ‘한국산접류분포도’ 등의 유고집들이 발간되면서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85년 출간된 이병철의 ‘석주명평전’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석주명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6년 초등교과서에 ‘석주명’ 이야기가 실리면서 그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과학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1997년 문만용의 석사논문 ‘조선적 생물학자 석주명의 나비분류학’은 학계에서 석주명을 최초로 다뤘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1998년 문화관광부가 석주명을 ‘4월의 문화인물’로 지정함으로서, 비로소 국민 과학자로 부활하게 되었고, 2011년에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그린 뮤지컬 ‘부활-더 골든 데이즈’가 공연되었다.


제주도에서 석주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이다. 그의 서거 50주기를 기념하여 제주전통문화연구소에서 ‘제주학 연구의 선구자 고(故) 석주명 선생 재조명’이라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나비학자로만 알려지던 그가 제주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하였다. 그가 근무하던 제주도시험장이 있던 2003년 서귀포 토평 네거리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지면서 석주명기념사업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이듬해에는 오성찬의 석주명 실명소설 ‘나비와 함께 날아가다’가 발간되었다. 그리고 2011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에서 개최한 ‘학문융복합의 선구자 석주명을 조명하다’는 그의 학문적 넓이와 깊이를 새롭게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에스페란토 도입 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나비박사 기념엽서가 발행되고, 2009년 한국과학기술원 한림원에서 석주명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였으며, 2010년 한국조폐공사에서 석주명 인물메달을 주조하였고, 2015년 우정사업본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자 우표를 발행하였으며,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첫 과학기술유공자로 석주명을 비롯한 32명을 선정됨으로서 그는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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