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빌레낭집, 자연과 조상의 흔적 그대로 담았다

법환 포구 인근에 건축된 빌레낭집,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집이다.(사진=장태욱 기자)

법환 포구 인근에 건축된 빌레낭집,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집이다.(사진=장태욱 기자)

법환 막숙이 포구와 범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독특한 집이 들어섰다. 조상 대대로 살던 터에 아들이 노모를 위해 마련한 집이다. 지붕은 제주의 오름을 닮은 곡면이고, 내부는 오래된 초가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놨다.

법환마을 강의웅 씨(51)는 지난해 노모를 위해 집을 장만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상 대대로 살던 초가의 구조를 그대로 남기고, 재생방식으로 내부 설비와 창호만 현대식으로 고쳐볼 요량이었다.

이곳은 부모와 조부모 등 조상 대재로 살던 터다. 10대가 한 장소에 살았다니, 이곳에서 짓고 뜯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을 것이다.

강의웅 씨는 “9대조 할아버지께서 1700년대 중반, 조선 영조 때 이곳에 정착했다고 들었다”라며 “이곳에 정착한 할아버지 입장에선 내가 종손이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집이 오래되 낡았기 때문에 어머니께 주변 신축 발라라도 구해서 사시라고 권했지는데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만큼 조상 대대로 이어서 살던 터와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마침 제주대학교 건축과 김아무개 교수에 자문을 구했더니, 일을 잘할 사람이라며 김성 건축가(52)를 소개했다.

김성 건축가는 “처음에 건축 의뢰가 왔는데 확신이 없었다. 대들보는 육안으로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서까래는 뜯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며 “그래서 문화재 전문위원을 불러 자문을 구했더니 상태가 문화재급으로 좋다고 하더라”라로 말했다. 두 사람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기존 초가를 해체하고 대들보와 서까래 등을 그대로 신축 재료로 활용했다.(사진=김성 건축가 제공)

기존 초가를 해체하고 대들보와 서까래 등을 그대로 신축 재료로 활용했다.(사진=김성 건축가 제공)

처음에는 초가를 복원만 했으면 하는 마음었지만, 최근 띠풀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해마다 지붕을 이는 것도 쉽지 않아 집을 허물어 새로 짓기로 했다. 초가의 서까래와 대들보 등을 신축건물 재료로 활용하고, 시렁이나 상방 등 초가의 내부구조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상량을 뜯어내는데, 상량에는 초가가 1910년에 개축된 것이라는 기록이 나왔다. 그 이전의 내력에 내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 상량과 대들보, 서까래 등도 고스란히 뜯어냈다.

주택 내부는 초가의 구조를 그대로 옮겼다.(사진=장태욱 기자)

주택 내부는 초가의 구조를 그대로 옮겼다.(사진=장태욱 기자)

건축을 시작했는데, 지붕을 곡면으로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경량목구조로 곡면의 틀을 만들고, 그 위에 합판을 깔았다. 그리고 합판 위에 평면 알루미늄 판을 퍼즐처럼 촘촘히 잇고 붙여 초가와 같은 곡면구조를 완성했다.

기존 초가가 있던 59㎡ 면적에 같은 구조로 주택을 재생하고 인근에 40㎡를 신축해 연결했다.

강 씨의 어머니는 집이 완공되자 “너무 기분이 좋다”라며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친척들 불러서 밥이라도 먹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마당에 큰 돌들이 박혀 있는데, 건축과정에서 이를 빼내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원래 자연과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보자는 게 이번 건축의 요지다. 그래서 집의 이름도 ‘빌레낭집’으로 정했다. 빌레는 돌이고 낭은 나무니, 제주의 자연을 담은 집이다.

강의웅 씨는 “10대 300여 년 동안 빌레 분지 지형을 이용했던 초가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주위 자연에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건축이었다”라며 “이곳에서 평생 온화하게 지내신 어머니께서 늘 건강하시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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