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특집] 감자가 전하는 이야기⑤

포토시 광산의 참상을 알리는 그림. 디오도루스 드 브라이의 1590년대 판화
포토시 광산의 참상을 알리는 그림. 디오도루스 드 브라이의 1590년대 판화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이 신대륙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을 점령하고 그곳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스페인 왕에게 새롭게 발견한 땅을 지배할 권리와 더불어 기독교를 포교할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왕정이 스페인 식민화에 공모한 셈입니다.

실제 스페인을 점령한 것은 왕의 군대가 아니라 귀족들이었습니다. 스페인 왕정이 재정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귀족들은 인근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들과 오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그 여세를 몰아 신대륙에 진출한 것입니다. 그들은 군사력을 동원해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원주민을 노예로 취했으며, 원주민을 집단으로 학살하는 만행도 자행했습니다.

지금의 쿠바섬을 점령하는 데 참여했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신부가 쓴 「서인도제도의 역사」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저지른 만행이 나옵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의 틈으로 들어가 사람을 칼로 자르고 머리를 부수고, 물속에 집어넣고, 내장을 꺼내 죽였다고 합니다. 산토도밍고에서 바하마제도로 가는 뱃길은 시신을 따라가면 나침반이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전락한 원주민들은 산이 벌거숭이가 되도록 땅을 파야 했고 사금 자루를 등짐으로 날라야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당시, 전 세계 인구는 4억 명 정도였고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8000만 명 정도였다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1500년대 중반에 1000만 명, 1600년 무렵에는 500만 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정복자에 사살된 이들도 있고,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들여온 천연두나 흑사병, 독감 등에 걸려서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에스파뇰라섬(오늘날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섬)에 전도활동을 하던 몬테시노스(Fray Antonio de Montesinos) 신부는 당시 신대륙에서의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하고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그들을 잔혹하게 죽이면서 전쟁을 벌이는가?”라고 항변하며 스페인 정복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태라면 당신들은 무어인이나 터키인처럼 더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스페인 인문학자인 세풀베다는 원주민들은 천성적으로 열등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타고난 노예라며, 이들을 정복하고 강제로 개종시키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앞서 소개한 라스 카사스 신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는 당초 부를 축적하기 위해 신대륙에 발을 디뎠지만, 몬테시노스 신부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원주민의 권익을 지키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원주민들도 스페인 사람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교의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의 종에서 제외시켜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이후 원주민 노예제를 폐지하는 신법이 제정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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