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특집] 감자가 전하는 이야기⑦

잉카의 고대도시 마추픽추(사진=pixabay 제공)
잉카의 고대도시 마추픽추(사진=pixabay 제공)

콜럼버스 일행이 신대륙을 방문했을 당시, 안데스 산악지대에 잉카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잉카제국은 12세기에 지금의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태동했습니다. 티티카카 호수는 높이가 해발 3800미터로, 배가 다닐 수 있는 호수 가운데는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안데스 신화에 따르면,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가 물에서 솟아 태양과 달, 별과 생물을 창조했다고 전합니다.

잉카문명은 이후 세력을 키워 인근 문명들을 통일하고, 지금의 콜롬비아에서 칠레, 태평양 연안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안데스 해발 3400미터 골짜기에 수도 쿠스코를 건설했습니다. 쿠스코 북서쪽 80km 지점에는 요새도시인 마추픽추를 건설했습니다.

고대인들은 농사를 시작한 이래 지구 대부분 지역에서 곡물을 먹고 생활했습니다. 서아시아에서는 밀‧보리‧완두콩을,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완두를, 중국에서는 벼‧기장‧메주콩을, 아프리카에서는 수수‧벼를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과 달리 안데스를 포함한 남아메리카에서는 뿌리줄기나 덩이줄기 작물이 곡류를 대신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카사바‧고구마를 주식으로 삼았는데, 특별히 안데스인들은 감자와 오카를 먹고 살았습니다.

안데스 지형은 깎아지른 절벽이 주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경사각 20도가 넘는 비탈에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었습니다. 계단 앞부분에 돌담을 쌓고 멀리서 흙을 날라고 계단을 채우는 방식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발쟁기로 밭을 갈고 감자의 구근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잉카인들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콜럼버스 일행이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지 약 40년이 지나자,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입니다.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32년, 병사 168명을 데리고 잉카의 산악도시인 카하마르카로 쳐들어왔습니다. 당시 잉카의 황제는 아타우알파였는데, 그 곁에는 8만 명의 병사가 있었습니다. 수적으로는 잉카의 병사가 스페인 병사의 500배에 달합니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자 그 많은 잉카인들이 제대로 싸움도 못해보고 패배했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이 총소리와 나팔소리를 내며 공격을 하자 잉카의 8만 군사는 겁에 질려 갈팡질팡했습니다. 그 틈에 말을 탄 스페인 병사들이 잉카인들을 칼로 베기 시작했고, 피사로는 황제를 생포했습니다.

피사로는 황제를 통해 잉카의 백성들을 마음대로 조종했습니다. 잉카의 백성들은 황제의 말에 복종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시킬 수 있었습니다. 피사로는 황제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을 받았지만, 결국 황제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용맹을 자랑하던 잉카의 군사들도 총과 칼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돌과 청동, 손도끼로 신식 무기를 상대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게다가 생전 말을 본적이 없는 잉카인들은 말을 타고 달려드는 스페인 병사들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피사로는 이듬해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를 정렴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금을 찾으러 왔지 농부처럼 땅을 파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피사로는 그렇게 좋아하던 황금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정복자들 내부에 분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피사로가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알마그로를 죽였는데, 그 보복으로 1541년 알마그로의 부하들에게 살해됐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