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특집] 감자가 전하는 이야기⑨

맬서스의 인구론. 동서문화사 번역본인데 500페이지가 넘습니다.
맬서스의 인구론. 동서문화사 번역본인데 500페이지가 넘습니다.

‘인구는 통제되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기초생필품은 단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숫자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첫 번째 위력(인구 증가)이 두 번째 위력(생필품 증가)에 비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게 된다. 인간의 삶에 음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자연법칙으로 인해, 이 두 가지 비대칭적인 힘의 영향은 대등하게 조절돼야 한다. 이것은 생필품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강하고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인구에 대한 통제를 암시한다.’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은 증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구는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맬서스는 1766년 런던 남부의 웨스트우드에서 태어나 16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고 1788년 제9위 수학과 학위시험 우승자로 졸업했습니다. 1798년에 익명으로 「인구론」을 간행해, 당시 이성의 완벽성과 사회진보의 필연성 등을 역설한 계몽주의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1803년에 처음으로 책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고, 그 결과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맬서스는 만일 인구증가 경향에 어떠한 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세계 인구는 25년마다 2배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늘어난 인구는 지구 전역에 경작지 확대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개간지 거주민들을 몰아내거나 굶겨죽이는 부도덕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식량생산량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증가하면 유아유기와 전쟁, 유행병 등으로 인구에 대한 억제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이런 억제는 인구가 식량이 허용하는 범위 이내로 떨어질 때까지 지속된다고 내다봤습니다.

맬서스는 생산력 증가→여유 증가→인구 증가 → 생필품 부족 → (전쟁 및 질병으로 인해)인구 억제 등이 과정이 무한 반복되며, 결국 인류는 생필품 부족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이 무한반복의 사이클을 ‘맬서스 트랩’이라 부릅니다.

감자꽃이 피면 땅속에서 감자가 영글고 있는 것입니다.(사진=장태욱 기자)
감자꽃이 피면 땅속에서 감자가 영글고 있는 것입니다.(사진=장태욱 기자)

실제로 1400년과 1700년 사이 유럽 전역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수천 건의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0년에 한 번 꼴로 대기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 유럽에 감자가 도입된 이후 식량생산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감자는 곡류와는 차별되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보리나 귀리 등의 18배에 달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았고, 곡물이 자라지 못하는 휴경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재배기간이 3개월 남짓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수확을 할 수 있었고, 전쟁시기에는 수확을 하지 않고 땅에 묻어뒀다가 나중에 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감자는 농업의 산업화를 불러왔습니다. 사람들은 품종개량을 통해 질병에 강하고 생산성이 뛰어난 감자종이 개발했고 고강도 비료를 감자에 투입했으며,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살충제를 개발했습니다. 감자로 인해 유럽인들은 기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감자를 통한 농업의 산업화는 유럽을 멜서스 트랩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구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아일랜드를 예로 들면, 감자가 도입되기 전인 1600년대 초반 인구는 150만 명이었는데, 감자가 도입된 이후 1800년대 초반에는 85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200년 사이에 5배 넘게 늘어날 정도였습니다. 유럽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유럽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자의 도입과 농업기술의 진보는 결국 맬서스의 예측을 빗나가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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