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자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탁하는 정치제도이다. 18세기 이후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투표권과 선거, 정당정치와 같은 요소들이 정착됐고, 복잡한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의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운영방식으로 굳어졌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국민(주민)을 보호 ▲시민적 기본권 보장 등을 핵심 가치로 포함한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최선의 심판자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치가 스며있다.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자체도로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유권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선거제도의 불합리성도 있다. 주민의 의사표시 결과로 나타나는 투표를 어떻게 의석수로 전환해야 하는지도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지난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으로 민의를 왜곡할 수 있었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의 도덕적 해의를 막을 방안도 충분치 않다. 유권자의 선택으로 단체장이나 의원에 선출된 자들이 이후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정해진 기간에는 이것을 제어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제도적으로 주민소환제가 있지만,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한계도 있다. 다른 시‧도의 경우는,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들도 선출하지만 지난 2006년 제주도의 행정계층구조가 단층적으로 개편되면서 기초자치단체는 폐지됐다. 사실상, 제주지사가 제주도 행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맡는 구조다. 두 개 행정시에 시장이 있지만, 시민이 아닌 도지사로부터 권한을 수탁한 대리인에 불과하다.

이런 기형적 행정계층구조는 지방자치의 가치와 효용을 훼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사무처(2009)는 제주도와 같은 행정체제 개편이나 통합은 실제로 기대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도 2010년 연구에서 도내 공직 및 시민사회에서 현재의 단층적 행정계층구조에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지사가 내년 열리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도지사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서귀포신문이 원 지사의 측근 인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시기의 문제일 뿐 조기 사퇴를 기정사실이라고 한다. 원희룡 지사가 조기에 사퇴할 경우, 정무 부지사를 포함해 정무직 공직자들도 함께 자리를 내놓게 되고, 행정부지사 이하 행정관료들이 도정을 이끌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과 몇 개월 동안이지만 제주도는 도민에 위임받지 않은 권력이 도민을 통치하는 민주화 이전 사회로 회귀하게 된다.

책임의 절반은 원희룡 지시에 있고, 절반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한 특별자치도 제도에 있다. 서귀포시만이라도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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