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화가의 '섭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 화가의 '섭섬이 보이는 풍경'

고향으로 돌아온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단지 몇 편의 작품만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불행한 시대와 비운의 가족사,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서귀포 등을 한꺼번에 느낄 기회다.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1929년 민족혼을 교육이념으로 삼았던 오산학교에 입학했다. 오산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그림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게 됐다. 학교를 졸업한 후 화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제국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 입학했다. 1938년 일본에서 자유미술가협회가 실시한 제2회 공모전에서 입선 및 협회상을 받는 등 재능을 인정받았다.

1940년에는 연구생 과정으로 계속 학교에 다녔는데, 이 무렵 문화학원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와 열애에 빠졌다. 마사코 부모의 반대에 두 사람의 사랑은 파경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중섭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마사코는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있는 이중섭을 만나기 위해 원산까지 찾아갔다. 두 사람은 1945년 5월에 결혼했고 석 달 후에 광복을 맞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중섭은 가족과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1951년 1월, 마침내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들어왔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중섭 가족은 거리에서 만난 어느 피난민 노인에게서 “서귀포가 좋소”라는 말을 듣고 여러 날을 걸어 서귀포까지 이동했다. 도중에 소 외양간에서 눈보라를 피하기도했다는데, 서귀포에 도착한 후 송태수․김순복 부부의 집에 기거했다. 집은 네 식구가 기거하기에 턱없이 비좁았지만, 마당에서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화가에서 많은 영감을 안겨준 집이다.

이중섭의 가족은 피난민 증명서를 받아 식량 배급을 받았고 바다로 나가 게를 잡거나 해초를 뜯어 목숨을 이어갔다. 가끔은, 초상화를 그려주고 보리쌀을 얻기도 했다. 아름답지만 척박한 서귀포, 가난한 화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그는 바다, 귤, 어린이, 방목하는 소, 들판, 물고기 등을 탁월한 감수성과 미의식으로 표현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전쟁을 피해 무일푼으로 고향을 떠나면서부터 고통과 가난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화가 이중섭은 회화의 재료는 커녕 당장 먹을 식량도 부족했던 시기에도 현실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상황을 통해 이질적인 예술 양식을 극대화했다.

이건희컬렉션 이중섭특별전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歸鄕)》이 지난 5일 개막해 내년 3월 6일까지 개최된다. 지난 4월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이중섭 원화 12점을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이는 전시회다.

화가의 대표작인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포함해 유화 6점과 수채화 1점, 은지화 2점, 엽서화 3점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단지,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의 눈물 나는 가족사, 아름다운 서귀포의 자연, 도시의 역사까지 모두 되새길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 기회에 피난민 노인이 “서귀포가 좋소”라고 했다는 말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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