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시비 제막식(사진=장태욱)
17일 시비 제막식(사진=장태욱)

 

故 김재윤 전 국회의원의 시비가 서귀포기적의도서관 뜰에 세워졌다. 서귀포문인협회(회장 안정업)와 김재윤기념사업회(이사장 서명숙)가 16일 오후 3시, 시비 제막식을 열었다.

하얀 보자기를 벗기자 시〈어머니의 손〉이 새겨진 비석이 보습을 드러냈다. 빗물에 비석이 젖는 장면이, 마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만큼이나 서글펐다.

어머니 손을 펴 보니/ 어머니 손바닥에 별이 가득했어요/ 수많은 세월이 별이 되었어요/ 무정한 세월과 다투지 않고/ 이 언덕 저 언덕을 쌓았어요/ 세상과 싸우지 않고/ 세상을 그저 살았어요/ 빛도 어둠도 함께 살았어요/ 별이 되어도 여전히 아픈 손/ 여전히 슬퍼도/ 한결같이 빛나는 손

많은 이의 슬픔과 아쉬움은 마치 노동에 지친 우리네 어머니의 손등처럼 까만 비석으로 태어났다.

제막식의 주제는 ‘시작, 김재윤’이라고 했다. 시를 쓰는(詩作) 작업과 고인의 뜻을 이어가는 일을 시작(始作)하겠다는 중의적인 의미다. 시비 제막식은 많은 이에게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어떤 이는 서귀포기적의도서관 건립 등 서귀포에 독서운동을 불러일으킨 점을 기억하고, 또 어떤 이는 개혁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다. 그가 권력의 부당한 기획수사에 희생을 당한 점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그가 젊어서 교수로 재직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음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고뇌를 오롯이 작품에 담을 만큼 맑은 영혼을 소유했다며, 시인으로 오래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음을 아쉬워한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점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우울의 원인은 권력의 기획수사, 부당한 재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그 부당한 재판을 진행한 판사가 현 정권에서도 요직에 올랐다니, 어찌 맨 정신으로 시대와 화합할 수 있겠냐는 탄식이 나온다.

비 날씨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기념사업회장을 맡기로 했다. 서명숙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김재윤 의원에게 내가 지은 죄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의 고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아쉬움과 회환이 묻어나는 말이다. 어쩌면 빗속에 모인 모두의 자기고백일 것이다.

양경희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은 이날 취지사에서 책 전도사였고 시인이었기에, 고인의 뜻을 이어 김재윤 문학상 제정, 도서보급 사업 등 고인을 추모하는 사업을 시작할 뜻을 밝혔다.

이제 고인을 추모하며 슬퍼하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그 죽음을 통해 교훈을 얻고, 고인의 뜻을 이어가는 일은 오롯이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상대를 죽이려 달려드는 증오의 정치도 이제 접을 때가 됐다. 정치 영역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과 주장을 논리와 설득을 통해 펼치는 품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도시. 그런 분위기속에서라야 문화도시 서귀포에 빛이 날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아침이슬처럼 맑은 사회, 우린 그런 사회를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시를 쓰던 고인을 진정 추모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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