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영식 위미농협 상무

올레 5코스,  위미리에서 공천포로 가는 해변길(사진=장태욱 기자)
올레 5코스, 위미리에서 공천포로 가는 해변길(사진=장태욱 기자)

찌뿌둥하게 흐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올레투어를 시작하려니 아내를 졸라 가방도 사고 신발도 사도 옷도 샀다. 그렇게 나의 올레투어를 시작했다.

남원포구에 내려 초보 올레꾼 티를 내면서 간세라는 낙인을 한 손으로 들어서 폼을 잡고 셀카를 찍으며 올레수첩에 첫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남원포구를 지나 남원리 대표 명소 큰엉을 지나고 위미리 해안으로 접어드니, 아니나 다를까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심상치가 않다.

매섭게 몰아치는 파도와 바람에 휘둘리는 갈매기.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드는데, 내 머릿속에는 추억의 풍경 한 장이 남는다. 그래도 전문 올레꾼인 양 일회용 비옷을 입고 노란 병아리가 되어 빗속에 혼자 길을 걸었다.

위미리 조배머들을 돌아 공천포 해안가로 접어들자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온 몸을 적신다. 저 멀리 보이는 위미리 넙빌레에 올레꾼 한 명이 비가림막에서 비를 쫄딱 맞고 원망스러운 듯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나도 쉬어갈 겸 비가림막에 들어가 잠시 비옷을 벗고 비에 젖는 옷을 털어 보지만 영 시원치 않다. 이왕 젖은 거 빗속의 상남자라도 된 듯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걷기 시작했다.

잠시 옛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걷는데 망장포 해안 너머 풍경이 장관이다. 어두컴컴한 숲길을 지나 밝은 빛이 보이는 풍경처럼 내리는 비와 세찬 바람 속에서 걷고 있는 내가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뚫고 나온 개선장군인 양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덧 다다른 종점이 저 멀리 보인다. 인생을 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온 길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들이 함께하듯이, 종점에 다다라 느끼는 희열, 내가 올레길을 다시 걷겠다고 결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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