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이맘때 제주도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꽃다운 청춘이 마구 파헤쳐질 위기에 놓인 섬사람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당시 집권 거대여당이 힘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밀어붙이는데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이 섬을 제2의 하와이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실상은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겠다는 야욕에 불과했다. 특별법에는 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다는 독소조항도 들어 있었다.

저항의 촛불은 거대한 횃불로 타올랐다. 지역의 문제로 인식되었던 특별법이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제주지역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외지에 있던 향우회원들도 투사로 만들어버린 사건이었다.

양용찬 열사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 어머니에게 남긴 시는 당시, 비장한 심정을 잘 보여준다.

‘개구리마냥 불룩 튀어나온 배를 채우기 위해/ 당신의 굽은 허리를 일구어낸/ 자갈밭을 빼앗아 가는 저들/ 당신의 호미로/ 아들의 괭이로 쫓아내야만 합니다.

- 양용찬의 유작 시 ‘어머님 전상서’ 중 일부

자본과 권력은 늘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농민들이 애써 일군 토지에 침을 흘렸다. 영혼이 푸른 청년은 그들과 맞서기 위해 호미와 괭이를 들고자 했지만, 현실에서 민초들은 너무나 힘이 약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야합해 결성한 민자당은 의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내 3명의 지역구 의원도 모두 집권당 소속이었다. 게다가 관공서와 관계기관도 모두 집권당과 한통속이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기댈 언덕이 없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푸른 청춘은 스스로 불꽃이 되어 날아올랐다.

그가 당긴 불꽃은 거대한 횃불로 타올랐다. 특별법을 막기 위한 거대한 투쟁이 전국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불의한 정권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했다. 이후 제주도에는 30년 동안 개발과 관련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강정마을에서, 예래동에서, 성산에서, 조천읍 선흘에서, 오라동에서 주민의 삶터를 훼손하려는 시도들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서 양용찬 열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11월이면 마을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고 제주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뜻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제주개발특별법 반대 투쟁 현장을 담은 사진집이 발간돼 그의 영정 앞에 헌정되는 뜻깊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와 동문회를 중심으로 학내에 그의 조형물을 건립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반갑고 뜻 깊은 일들이다. 적어도 지난 30년, 제주사회는 양용찬에 진 빚이 너무도 많아서, 그를 추모하는 일에는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투기꾼들이 기획한 난개발이 우리 주변에서 기획되고, 그에 따른 갈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추모가 끈질기게 이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난개발의 망령이 제주섬 주변을 배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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