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태욱 편집국장

지난 2019년 12월 운동본부가 조례안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 서귀포신문 DB)
지난 2019년 12월 운동본부가 조례안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 서귀포신문 DB)

제주도 농민수당이 우역곡절 끝에 내년부터 농민 1인당 40만 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농민단체가 2년여 기간, 줄기차게 펼쳤던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이기 때문에 수당을 받을 처지는 아니지만, 그간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반가움을 거둘 수 없다.

제주지역 농민단체들은 지난 2019년 ‘제주 농민수당 조례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제주특별자치도 농민수당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운동에 돌입했다.

운동본부는 이후 7500여 장에 이르는 청구인명부를 작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주민발의 청구인명부를 제주도청에 접수했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6월 운동본부가 제출한 조례안을 일부 수정해 가결했다. 3년 이상 제주에 거주하면서 농업경영체에 등록해 2년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에게 예산 범위 내에서 농민수당을 지급한다는 게 조례의 기본내용이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 가입자와 농업 외 종합소득금액이 3700만 원 이상인 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급 시기 및 액수 등은 농민수당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농민수당 위원회(위원장 고영권 정무부지사)는 조례에 따라 10월 23일 ‘2022년 농민수당 지원계획’을 심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 과정에서 농민 1인당 연 4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제주지역 농민수당 지급대상이 5만9000여 명으로 집계됐는데, 농민수당 지급에 필요한 총 예산이 224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내년도 예산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제주도가 지난달에 제주도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농민수당을 20만 원으로 삭감하는 내용이 담겨 비난을 초래했다. 정무부지사가 위원장으로 진행한 심의 결과를 실세 실장이 뒤집었다며, 농민단체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심의위원회 의결사항을 뒤집으면서 정작 위원들에게는 사전에 알려주지도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조례가 정한 공식적인 기구를 무시하는 제주도의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농민들은 성명을 내고 제주도 예산 6조 시대에 220억 원이 없다고 수당을 반절로 줄이는 건 농업과 농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도정을 비난했다. 그리고 제주도와 도의회를 항의 방문하며 수당을 되돌리라고 요구했다.

도의회는 농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농민수당을 40만 원을 되돌리기 위해 머리를 짰다. 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위원장 현길호)는 제400회 도의회 제2차 정례회에서 내년도 예산을 심사하면서 일반회계가 아닌 농어촌진흥기금을 활용해 수당을 확보하기로 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박호형)는 2021년 초과 세입과 집행 잔액이 과다하게 발생할 것을 분석해 212억 원 규모의 가용재원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농민수당은 농민 1인당 연 40만 원으로 확정될 상황이다.

농민수당은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보상하고 소멸할 지도 모르는 농촌을 유지해 국민의 먹거리를 보장한다. 그리고 지역 화폐로 지급하면 지역 골목상권도 살릴 수 있다.

대규모 토목사업에 수백억 원을 망설임 없이 지출하면서도 농민과 농촌을 살리는 더 근본적인 정책은 외면하는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서, 누가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제주의 농민들은 척박한 자연환경과 신자유주의 물결, 부동산 개발광풍 등의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농토와 경관을 지키고 농촌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가꾸는 이들이다.

그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조례제정운동부터 도정 감시 등 꾸준히 노력했던 농민단체에게 격려와 응원의 뜻을 보낸다. 그리고 자칫 조례 무력화와 행정 불신, 의회 무용론 등으로 이어질 뻔했던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한 도의회의 노력에도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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