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
하승수 변호사

한때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을 꿈꿨던 일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침체를 겪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붕괴한 이후 일본이라는 국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의 1인당 GDP는 세계 23위(2020년 구매력평가 기준)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때 수출에 강한 국가였던 일본이지만, 지금은 무역수지도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대외순자산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사회지표를 보면 더 심각하다. 일본인의 평균임금은 지난 30년간 4% 오르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에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평균임금은 2배 이상 올랐다. 일본인들의 행복도는 세계 54위에 불과하다(2022년 세계행복보고서). 물론 59위인 한국보다는 높은데, 일본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나라’였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독일은 여러 점에서 일본과 유사하다. 일본과 똑같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고, 그 이후에 부흥의 과정을 거쳤다. 1980년대까지는 오히려 일본에 밀렸는데 지금 독일은 경제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나 일본보다는 훨씬 나은 실정이다. 독일은 2022년 세계행복도 순위에서 독일은 14위를 차지했다.

일본 경제가 장기간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사진=pixabay)
일본 경제가 장기간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사진=pixabay)

필자는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정치에 있다고 본다. 일본의 정치는 여전히 부패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일본인들의 정치 불신은 낮은 투표율에서 잘 드러난다. 2021년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 투표율은 55.93%에 불과했다. 그나마 2017년의 53.68% 투표율보다는 나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없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중의원(하원) 총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투표율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 자민당이라는 거대정당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지형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2021년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76.6%였다. 일본보다는 투표율이 훨씬 높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덜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다당제 국가로 분류된다. 특정정당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다른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복지, 환경, 인권 등과 관련해서도 정치의 영역에서 필요한 의사결정들이 어느 정도는 이뤄지고 있다.

한 국가의 미래는 상당 부분 정치에 달려 있다. 부패와 특권, 특혜가 정치영역에서 사라지느냐 아니냐, 합리적이고 토론이 가능한 정치가 이뤄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는 일본과 독일 중 어디에 가까울까? 지금은 일본에 가깝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투표율은 일본에 비해 높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 투표율은 66.2%였고, 2022년 대통령선거의 투표율은 77.1%였다. 한국 국민은 정치를 불신하면서도 정치에 관한 관심은 높다. 그러나 지금처럼 거대양당이 장악한 정치가 지속할 경우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누가 잘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잘못만 지적해도 되는 정치로는 시민의 삶이 나아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스스로 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권자인 시민이 정치의 변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일단 투표의 기준에서 정당기호를 빼야 한다. 정당기호만 보고 ‘묻지 마 투표’를 하면, 선거는 의미가 없게 된다. 뽑힌 사람도 사실상 선출직이 아니라 공천권자가 임명하는 임명직이 된다.

따라서 이제는 정당기호 중심의 투표에서 벗어나서 소수정당 후보, 무소속 후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 그래야 거대양당이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고, 정치변화의 작은 물꼬라도 틀 수 있다.

** 바른지역언론연대 공동칼럼입니다. 칼럼의 내용이 서귀포신문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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