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호남 도시공학 박사

우리는 공동체, 더 나아가서 국가 전체에 이바지할 수 있는 뭔가 교육적인 것,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한다.” 월트 일라이어스 디즈니는 19651115일 올랜도에 있는 체리플라자 호텔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그는 애너하임에 건립한 <디즈니랜드>의 성공으로 이미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상징이 된 상태였다. 당시 명확한 계획은 없었지만, 110.3까지 확장된 <디즈니월드>를 구상하며, 단순한 놀이공원을 뛰어넘는 미래 이상향의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그 도시를 월트는 앱콧(EPCOT)’이라 불렀다. ‘실험적 미래 공동체(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의 줄인 말로.

디즈니랜드가 개장한 이듬해인 1956, 미국 북동부 미니애폴리스 교외에 미국 최초의 쇼핑몰이 등장한다. 쇼핑몰 <사우스데일>을 설계한 빅터 그루엔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전쟁을 피해 미국에 정착한 인물로서, 상업가로변 건물들의 벽체를 전면 유리로 설계해 소비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낸 바 있었다. 그루엔은 자신이 설계한 상점들을 상거래를 위한 기계라 표현했다. 그가 이미 미국에서 백화점 다수를 설계했지만, 사우스데일이 갖는 의미는 컸다. 현대적 쇼핑몰의 전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2층 또는 3층의 공간을 넓게 비우고, 중정을 따라 보행이 가능한 테라스를 두르고, 에스컬레이터를 배치해 통행을 편리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추운 건물 밖에서 쾌적한 건물 내부로 들어온다. 그리고 쇼핑몰 내부 상점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쇼핑몰의 쾌적성은, 쇼핑이 아닌 쇼핑몰 자체가 사람들을 부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한다.

목적이 아닌 장소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의 원조는 백화점이다. 그 속성을 꿰뚫어 본 사람은 프랑스인 아리스티드 부시코였다. “사람들이 몇 시간이고 거닐다 길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 1838년부터 작은 상점 오봉마르쉐를 운영하던 그는 백화점 <봉마르쉐>를 탄생시킨다. 봉마르쉐는 1880년대 백화점 시대의 선두주자가 된다.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 백화점은 당대 작가들의 비판적 배경으로 등장하더니, 역설적으로 귀족들이 독점하던 고급 소비재에 대한 소비 민주화에 기여했다.

쇼핑몰이 가지는 의미는 소비 민주화 이상이었다. 쇼핑몰은 세계화의 촉매가 된다. 쿠알라룸푸르에 가면 파빌리온이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 이곳에는 5개 층의 단일 공간에 중정을 두르는 테라스형 상점들이 있다. 사우스데일과 놀랍게 비슷하다. 사우스데일은 미국 북부의 혹한을 피해서, 파빌리온은 말레이시아의 더위를 피해서 쇼핑몰의 쾌적한 공간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이제는 전 세계 삶의 양태가 비슷해져가고 있다. 여기에 쇼핑몰이 기여하는 것이다.

쇼핑몰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문화적 프렌차이즈라는 것이다. 즉 똑같은 것에 대한 모방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지만, 세계화가 가져오는 특징 없는 동일함, 매스 컬쳐(Mass Culture)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라는 비판. 자본의 효율과 돈벌이에 치중하다 보니 전 세계에 똑같은 모델이 퍼지고 있다. 여기에서 고민이 생긴다. 그것만이 길인가?

지역은 지역만이 갖는 고유의 성질이 있다. 자연, 사람, 역사가 어우러지는 문화. 이것을 잘 가꾸고 발전시키는 곳은 아름다운 풍요를 누린다. 하나의 결과를 만드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잘 하려면 말이다. 서귀포에 올레시장이 있다. 대정, 모슬포, 중문, 서귀포, 고성에 오일시장이 있다. 그것만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요소를 찾아내고 더 다듬는다. 월트는 앱콧에 자신의 이상이 투영되길 바랐다. 디즈니월드는 수많은 놀이공원 프렌차이즈 중에서 현재 세계 최고다. 우리도 우리의 이상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우리들의 장소에 그것을 투영해 내자. 우리만의 이상을. 디즈니를 넘어서는 우리의 이상을.

 

강호남 박사
강호남 박사

저자 소개

       강호남

       서귀포시 출생,  남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도시공학 박사

       건축시공기술사,  (주)델로시티 상무

       국민대 출강                            

       서울시 중구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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