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에 모여 지지하는 후보를 응원하는 유권자들(사진=장태욱 기자)
유세장에 모여 지지하는 후보를 응원하는 유권자들(사진=장태욱 기자)

선거는 시민과 대표자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이며, 시민에게 대표자를 선택할 권리를 제공하는데, 그 한 차례의 과정이 있어서 대표자는 시민의 요구에 반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도구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두 명 이상의 후보자가 입후보하고 당선을 위해 경쟁하는 구도에서만 보장된다.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권이 살아 있을 때, 대표자가 유권자의 요구에 반응하는 대의제의 기제가 작동한다.

선거가 경쟁적이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후보가 선거에 출마해야 하고, 두 후보가 득표율이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정도라야 한다. 후보 한 명만 출마해서 투표 없이 당선되거나, 두 후보가 출마했지만, 투표 전에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선거라면 유권자의 권리는 없다.

정치학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은 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무투표 당선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9년 4월에 치러진 제19회 지방선거를 보면, 전체 정수 1만5268명 가운데, 1988명이 투표 없이 당선됐다. 그 비율이 12.4%에 달한다. 지난 2007년 열린 제16회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비율이 7.8%였는데, 12년 만에 크게 늘었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입후보자는 점점 줄고 무투표 당선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학자들은 이 상황에 지속되면 일본에서 대의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우리나라에도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 있다. 6.1지방선거 지역구 광역의원 선거구를 전국 시도별로 분석해보면, 경기도, 부산광역시, 대전광역시 등에는 무투표 지역구가 한 석도 없다. 서울에 두 석이 있는데, 언론이 선거 무관심을 부추기는 가운데도 활력이 넘치는 도시권에는 선거의 경쟁구도가 여전이 살아 있다.

그런데 경북에는 17개 도의원 선거구에서, 전남에는 무려 27개 선거구에서 투표없이 당선자가 결정됐다. 이런 지역에 지방선거가 대의제의 도구로 작동할 리 없고, 대표자가 유권자의 요구에 반영할 이유가 사라진다. 전남이나 경북이 갈수록 낙후를 면치 못하는 데는 대의제 도구로서 선거가 실종한 것도 한몫 차지한다고 불 수 있다.

도내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난다. 선관위가 도내 32개 지역구 도의원 선거구별로 후보자 등록을 접수한 결과, 2개 선거구에는 후보자가 각각 한 명만 등록했다. 서귀포시 남원읍 선거구에 출마한 송영훈 후보와 제주시 구좌읍 선거구에 출마한 김경학 후보는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됐다.

두 후보로서는 무투표 당선이 높은 경쟁력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권자로서는 경쟁이 사라진 선거공간이 공허하다. 그리고 그 책임의 절반 이상은 유권자의 요구에 부응하지도, 사람을 키워내지도 못하는 정당에 있다. 사회 활력이 떨어지는 일본,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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