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호남 도시공학 박사

그 날 밤 포성은 유난히 가까웠다. 적을 향한 방어용 곡사포 포성이 이제는 자장가로 여겨지던 때였다. 콰쾅! 이건 틀림없이 부대가 포격을 맞은 것이다. 첫 포격에 허둥대느라 신발도 못 신었던 보름 전과 다르게, 강병장은 차분히 관물함에 둔 안경을 집었다. 천천히 전투복, 전투화, 철모를 착용했다. 사방이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막사에서 참호로 이동해 몸을 숙였다. 타타타탕! 이건 아군이 철조망 밖으로 쏘는 자동화기 소리였다. 시끄러운 고함 소리, 50mm 박격포 포탄 터지는 소리, 기관총과 소총 사격 소리, 헬기 소리까지. 적군이 쏘는 총은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혼바산을 넘어 투이호아 28연대 본부 경계 가까이 와 있었다. 용기를 내 참호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예광탄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고막 찢어질듯 한 굉음과 대비되어 낮처럼 밝은 조명탄 아래 총탄과 포탄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 불의 잔치였다. 그 풍경은 빠져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강병장은 1966827일 중앙청에서 거창한 환송을 받은 후, 103일 가시투성이 닌호아 백마부대 사단사령부 통신대대로 배속받았다. 이후 분대급으로 재배치되어 30연대와 사단본부를 거쳐 이듬해 최전방 28연대로 왔다. 도깨비 작전 중 밀림 한가운데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 28연대 통신병이었던 또 다른 강병장을 만났다. 긴장하던 초반과 달리 여유가 생기며 알게 된 친구였다. 그와는 언제 술 한 잔 하자고 말했었다. 새벽과 함께 적은 물러갔고, 엉망이 된 진지를 보수하기 시작했다. 강병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28연대 강병장을 찾아갔다. 그를 찾을 수 없었기에 동료에게 행방을 물었다. 동료는 덤덤하게 어젯밤에 전사했다 알려주었다. 충격을 받은 강병장은 막사 외벽에 막힌 포탄 파편 하나를 빼 윗주머니에 넣었다. 여기서 살아남았음을 감사하는 표로 평생 간직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나라 생존 참전 유공자는 251,547명이다(2021). 이 중 6.25 참전 유공자는 63,829, 월남 참전 유공자는 186,054, 동시 참전 유공자는 1,664명이다. 나라에서 정한 혜택은 매월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 35만원과 보훈병원 의료비 최대 90%감면이다. 국립호국원도 사용한다. 이것이 많다 적다의 논란도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 조정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경우, 국가가 미국으로부터 수령했던 병사들의 수당을 당사자에게 정당하게 지급했는지가 또 다른 문제로 남아있다. 바람직하고 옳은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더 고려할 것이 있다. 캐나다에는 참전 제대군인에 대한 권리장전이 있다. 그 핵심은, “존경, 존엄, 공정 및 예의로 대우하십시오.”이다. 헤겔은 노동에 관한 두 가지 윤리적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는 최소 임금의 보장, 둘째는 노동이 사회 공동선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참전 유공자 보상에 윤리적 기준을 생각해 보자. 물질적 보상은 중요하며,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윤리적 문제를 더하자는 것. 바로 존경이다. 이는 국가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관점을 바꾸는 문제다. 우리에게는, 국가보훈처가 국가 유공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뛰어넘는, 새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참전 용사들을 존경해야 한다.

로버트 케네디는, 경제적 분배에만 관심을 갖는 정치경제학이 일의 존엄성을 떨어트리는 점을 의식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나는 이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어요. 나는 이 위대한 공적 모험의 참여자예요.’라고.” 나라를 위해서 피 흘리며 또는 피 흘릴 것을 결심하며 그 모험에 동참했던 참전용사들께 바친다. “당신은 이 나라를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당신은 이 위대한 나라를 향한 모험의 중요한 참여자셨습니다.”

 

강호남 박사
강호남 박사

저자 소개

       강호남

       서귀포시 출생,  남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도시공학 박사

       건축시공기술사,  (주)델로시티 상무

       국민대 출강                            

       서울시 중구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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