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69)

오름의 이름을 살펴보면 물체의 모양이나 짐승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들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는 구쟁기 껍데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오름이 있다. 구쟁기는 소라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나시리오름 전경(샤진=한천민 소장)

구쟁기를 닮은 오름인 나시리오름은 성산읍 난산리 지경의 오름으로, 표선면 성읍 마을과 성산읍 수산 마을을 연결하는 서성일로 중간쯤의 도로변에 면해서 위치하고 있다. 이 오름 서쪽에는 뷰 제주하늘 승마장&ATV 체험장이 있고, 동쪽에는 AROUND FOLLIE가 위치하고 있다.

오름의 이름인나시리는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의 모양새가 소라껍데기를 닮은 나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여 나시리라고 하며, 한자 표기로는 소라 ()’와 퍼질 ()’를 써서 나시악(螺施岳)’이라 하기도 하고, ‘나시리악(羅時里岳)’, ‘나슬이악(羅瑟伊岳)’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오름에 조성된 몇 기의 묘에서 묘비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인 쇼와(昭和) 9(1934)에 세워진 유향좌수오공(留鄕座首吳公)孺人梁氏(유인양씨지묘)의 쌍묘에는 묘가 위치한 이 오름의 이름을 羅沙(나사악)’이라고 하고 있으며, 단기4294(1961)에 세운 宣人齊州高氏之墓(선인제주고씨지묘)에는 거문고를 뜻하는 한자어를 써서瑟岳(슬악)’이라고 새겨놓고 있고, 유향좌수오공재권지묘(留鄕座首吳公在權之墓)에는 羅瑟伊(나슬이)’라고 새겨놓았다.

나시리오름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성읍리 쪽에서는 성읍리 마을 북쪽의 성읍교 다리에서부터 수산리 방향으로 서성일로를 따라 약 3.8km를 가면 나시리오름 남쪽 기슭에 이르며, 수산리 쪽에서는 서성일로와 금백조로의 시작점이 만나는 수산2리 입구 교차로 로터리에서부터 성읍리 방향으로 약 4.6km를 가면 나시리오름 남쪽 기슭에 이른다.

나시리오름에는 정해진 탐방로는 없고 오름 서쪽 기슭에 위치한 승마장에서 이용하는 승마 코스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승마 코스는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으므로 승마 코스를 피하여 남쪽의 도로변 아무데로나 덤불과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올라야 한다.

나사리오름 굼부리(사진=한천민 소장)
나사리오름 굼부리(사진=한천민 소장)

나시리오름은 북쪽으로 터진 말굽형 오름으로, 자체높이는 매우 낮으며 남쪽의 야트막한 정상부를 중심으로 굼부리를 감싼 능선이 양쪽으로 느릿하게 뻗어가고 있다. 그런데 능선이 뻗어가고 있는 모양새가 북서쪽에서 남쪽의 정상부 쪽으로 점점 높아지다가 다시 서쪽으로 완만하게 낮아지고, 북쪽에 이르러 완전히 낮아지므로, 그 모양이 구쟁기 껍데기를 엎어높은 듯 보이기도 하고, 나사가 꼬인 모양을 닮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지형이 오름의 이름으로 유래된 듯하다.

오름에는 정상부와 좌우의 능선에는 큰 나무가 없고 거의 띠풀이 자라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 경사면에는 해송과 예덕나무, 청미래덩굴, 찔레 등 키 작은 나무들과 덩굴 식물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고, 동쪽 경사면에는 사스레피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이 많이 우거져 있다. 굼부리 안쪽과 남쪽, 서쪽 기슭에는 몇 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봄의 끝자락에 이른 어느 날 아침 서성로를 달려 성읍리를 지나 나시리오름으로 향했다. 봄이 끝나가는 무렵인데 벌써 한여름 날씨처럼 온도가 30도 가까이까지 치솟는 무더운 날씨다. 하늘에는 몇 군데에만 드문드문 구름이 걸려있을 뿐, 대부분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서 더욱 덥게 느껴진다. 라디오에서 요즘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하여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다고 하는 말을 한다. 어느 가수의 노래 '물 좀주소'가 간절히 생각나는 때이다. 길을 달려오는 주변으로도 농작물이 목말라 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나시리오름 입구에 도착해서 뷰 제주하늘 승마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승마장 주차장 옆에서부터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탐방로가 뚜렷이 나 있지 않아서 띠풀과 억새, 엉겅퀴, 가시덤불들이 올라가는 길을 가로막았지만 헤치고 올라갔다.

기슭에서부터 정상부 가까이까지 경사면에는 드문드문 큰 해송들이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예덕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과 찔레, 청미래덩굴 등의 덩굴식물들이 뒤덮여 자라고 있었다.

정상부로 올라서니 정상부와 주변 능선에는 서양민들레가 노란 꽃을 가득가득 피우고 있었다. 환경 파괴종으로 이젠 아예 우리 땅에 정착해버린 서양민들레를 퇴치할 수도 없는 마당에, 이제는 차라리 이걸 친환경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상부에서부터 굼부리 굴레를 따라 야트막한 능선이 한 바퀴 이어지고 있었다. 능선 위에는 나무들은 거의 서 있지 않았고 굼부리 안쪽을 내려다보니 키 작은 해송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리고 산담을 두른 묘도 몇 기 내려다보였다.

비록 높이가 낮은 오름이지만 정상부에서는 사방이 시원하게 바라보였다. 가까이 이웃해 있는 오름으로는 남서쪽에 모구리오름, 남동쪽에 유건에오름이 있었다. 서쪽으로 한라산과 그 아래 크고 작은 오름들이 파란 하늘 하래 바라보였다. 사방을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보이는 오름들로 곧바로 이름을 알 수 있는 오름들로는, 영주산, 통오름, 독자봉, 큰물메, 일출봉, 바우오름, 낭끼오름, 멀미오름과 그 위로 봉우리 꼭대기만 뾰족 솟아올라 보이는 지미봉, 큰왕메, 용눈이, 손지오름, 다랑쉬, 돌미, 뒤꾸부니, 궁대오름, 거미오름, 높은오름, 월랑지, 성불오름, 민오름, 개오름, 비치미, 큰사슴이 등이었다. 멀리 동쪽으로는 우도까지 바라보였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오름이어서 주변에는 농경지와 초지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농경지에는 감자를 심은 밭들과 말과 소의 먹이로 사용하는 먹이용 풀을 재배하는 초지들이 내려다보였다.

능선을 따라 한 바퀴 걷는데, 정상부와 그에 이어진 능선들에는 띠풀들이 크게 자라지 않고 말끔하여 능선을 따라 걷는데 오히려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오름을 내려와서 뷰제주하늘 승마장 사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 팬터믹이 시작되면서 승마장 손님이 엄청 많이 줄었는데 다시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승마와 ATV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으로 나가는 관광객들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코로나 팬더믹 이전보다 아직은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코로나 팬더믹 기간에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대출을 받아서 겨우 운영을 해야 했다고 한다.

오름 탐방을 마치고 돌아나오며 뒤돌아서서 올려다 본 오름 위의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유난히도 푸르렀다.

 

 

위치 :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지경

굼부리 형태 : 말굽형(북쪽)

해발높이 164m, 자체높이 29m, 둘레 932m, 면적 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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