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도서관, 나무와 숲 (27)] 무릉2리 구남물 팽나무 보호수

구남물 동쪽 가장자리에 팽나무 보호수 세 그루가 있다.(사진=장태욱 기자)
구남물 동쪽 가장자리에 팽나무 보호수 세 그루가 있다.(사진=장태욱 기자)

장마가 시작됐다. 야생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불끈 거리는 시간이다. 비가 한껏 쏟아진 후 늪을 터전으로 삼는 놈들은 더욱 그렇다.

대정읍 무릉2리 인향동에는 구남물이라는 연못이 있다. 오래 전에는 주변 농부들이 소를 끌고 와 물을 먹였던 연못이었다고 전한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사람도 이곳에서 물을 길어 먹기도 했고, 멱도 감고 빨래도 했다.

사람이 마시는 물고 소를 먹이는 물이 크게 구분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소들이 다녀가기 전에 아침 일찍 사람이 물을 길어 갔고, 이후에 소에게 물을 먹였다.

동쪽 연못 가장자리에 아름드리 팽나무 세 그루가 연못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렸다. 두 그루는 300년을 넘긴 것이고, 한 그루는 100년을 넘긴 것이다. 연못 서쪽과 구남동마을회관 입구에도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 이 일대에 팽나무가 많이 자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남물이라는 말의 유래도 나무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있어서 ‘구남’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고, 구남(굴참나무)이 무성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팽나무 보호수 세 그루(사진=장태욱 기자)
팽나무 보호수 세 그루(사진=장태욱 기자)
담쟁이와 송악이 나무 줄기를 타고 오른다.(사진=장태욱 기자)
담쟁이와 송악이 나무 줄기를 타고 오른다.(사진=장태욱 기자)

이들 나무는 수령과 비교하면 매우 건강하게 자랐다. 오래된 나무는 보통 가지가 썩거나 기둥에 구멍이 뚫려 속이 텅 비기 일쑤인데, 이들 나무에는 그런 노화증상이 보이지 않는다. 담쟁이와 송악 줄기가 기둥과 가지를 타고 뻗어 오르기는 하는데, 이끼나 콩 짜개 넝쿨 같은 기생 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연못 근처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뿌리가 필요한 만큼 수분을 끌어올릴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나무 아래는 콘크리트로 쉼터가 설치됐다. 오래 전 어른들은 이곳 그늘에서 물가를 바라보며 더위를 달랬을 것이고, 장기를 두거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풍류에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은 연못에 몸을 던지며 웃음을 터트렸을 테니, 무릉도원의 여름이 이 연못과 그늘에서 무르익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구남물은 소가 물을 마셨다는 말조차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물이 탁하다. 낙엽이 썩고 진흙이 섞였는지, 물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다. 유기물이 썩는 퀴퀴한 냄새도 난다. 연못이라기보다는 늪이 맞다.

흰뺨검둥오리가 어디선가 날아오더니 늪으로 곤두박질쳤고, 잠시 후 입에 뭔가를 물고 올라왔다. 주변에 개구리가 떼를 지어 몸을 움직이는 걸 보니, 흰뺨검둥오리의 표적이 개구리였나 보다. 이들의 움직임으로 수면 아래서 약동하는 생명의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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