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체육대회 개회식에 앉은 주민들(사진=장태욱 기자)
마을 체육대회 개회식에 앉은 주민들(사진=장태욱 기자)

『삼국사기』에는 신라인의 전통 명절인 가배(嘉俳)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음력 8월 15일에 다 같이 모여 여자는 길쌈 내기를, 남자는 활쏘기를 하며 가무와 온갖 놀이를 즐겼다는 내용이다.

길쌈은 누에고치·삼·모시·목화 등의 섬유를 가공하여 명주·삼베·모시·무명 등의 피륙을 짜는 일인데, 동예·마한 등에서 시작된 후 삼국시대에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의류사업의 효시라고 부를 만하다. 신라 때에는 해마다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편으로 갈린 부녀자들이 길쌈내기를 했다. 8월 15일은 길쌈내기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었나 보다.

활쏘기는 동이족의 상징이었다. 고조선은 활을 무기로 광대한 땅을 다스렸고, 활 잘 쏘는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는 고조선의 용맹을 이어받았다.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 담긴 무사들이 활쏘는 장면은 보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우리 궁사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쓸어 담는 게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의 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석이라고 부르는 한가위는 신라의 가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배에서 비읍(ㅂ)이 탈락해 가애-가위가 됐다는 설명이다. 가위 앞에 ‘한’은 크다는 의미다.

과거 활을 쏘던 문화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농경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고 했다. 음력 5월 초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음력 8월이면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의미다. 한가위도 수확한 곡식으로 떡을 빚고 나누며 추수의 기쁨을 함께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농사 절기에 정보가 됐던 달(月)을 보면서 강강술래를 노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풍요 속에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농사 종류가 다양해지고, 시설재배가 일반화되면서 절기의 의미도 무색해졌다. 농번기 농한기의 구분도 사라졌고, 풍년이 재앙이 되어 돌아오는 일도 다반사다. ‘더도 말고 한가위’라는 말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됐다.

음식을 나누는 일도 예전처럼 반갑지 않고, 기쁨을 함께 나눌 대상도 그리 많지 않다. 청년들은 명절에 만나는 가족과 친척이 취업과 결혼에 대해 묻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명절 증후군’ 혹은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도 한가위는 한가위다. 마을마다 체육대회나 노래자랑으로 한가위를 기념하겠다고 나섰다. 한가위가 길쌈대회나 활쏘기대회가 열리던 가배에서 유래했다니, 어쩌면 가배의 정신에 가장 적합한 행사들이다.

추석 연휴 서로 스트레스 줄 만한 대화 삼가고, 가족?이웃과 좋은 추억거리 만들면 좋겠다. K팝이면 어떻고 트로트면 어떤가? 축구와 줄다리기, 난타 공연이 재미있지 않은가? 한가위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했지만,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자는 정신은 매한가지다.

제11호 태풍 힌남로도 지났고,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를 한가위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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