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이야기 (33)]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 문화센터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세상에는 세월이 지나고,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반복을 거듭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게 있다.

베트남 꽝린 성 노천탄광에서 온종일 일하고 채 1달러도 받지 않던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보이던 어린 소녀들,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에서 지나가는 관광객 구두에 입을 맞추고 멀뚱멀뚱한 눈으로 구걸하던 소년들, 자카르타 멘뗑 호텔 앞에서 자신들은 장대비를 맞으며 우산을 빌려주고 푼돈을 받던 깡마른 소년들, 필리핀 패스트푸드점인 졸리비 앞에서 젖니도 덜 빠진 어린 소녀가 걸음마를 막 뗀 아기를 안고 오른 손가락을 모아 입에 갖다 대며 먹는 시늉을 하던 모습 등.

부모와 사회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거리와 열악한 노동현장으로 내몰리고 방치된 모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자주 대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하여 적응할 수가 없었다.

'가난'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는 일들이 다반사인 세상에선,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모와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미래'라는 단어는 안타깝게도 부모 세대가 겪은 '가난'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절대적 기아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거리로 내몰리고, 노동현장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내일을 변화시킬만한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자식들에게 악착같이 교육을 했던 대한민국 부모들은 존경과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헌신과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하는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질 좋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었고, 수출역군으로 일할 수도 있었고, 무역 일군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남자들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들은, 산업체 학교에서 혹은 야간학교에서라도 학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들의 교육은 단순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소득증대를 갖고 온 것은 아니었다. 소득증대와 함께 보건 지식의 향상으로 가족 건강 증진과 유아 사망률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왔고, 조혼이 사라지면서 산모와 영아 사망률도 낮추는 기능을 하였다. 교육만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명절에 주변 이주노동자에게도 눈길을 기울여야 한다.(사진=pixabay)
명절에 주변 이주노동자에게도 눈길을 기울여야 한다.(사진=pixabay)

거리로 내몰리고 노동현장으로 내몰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주노동인 나라들이 있다. 꿈엔들 잊지 못할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을 이주노동자라 부른다.

누군들 추석에 고향을 찾고 싶지 않을까. 이주노동자라고 다를 바 없다. 괸당이 아니더라도 이번 추석은 이웃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눈길 한 번 줬으면 한다. 그들을 괸당들이 모인 곳에 함께 부르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이번 한가위는 우리 모두 따뜻한 눈길이 필요한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베트남 총각, 폭~낭

그때도/ 수령 기십 년은 됐을 거야/ 멱 감다 지치면/ 파란 열매가 달린 가지에 연줄을 매달고/ 폭낭 아래 잠을 청하곤 했지

새마을운동 때 마을 길 넓힌다고 나무를 베니 마니/ 동네 어른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옮겨심었네

마을 한복판에 위세 좋게 서 있던 폭낭/ 지지대에 의지해/ 마을?입구에서 끙끙대며 뿌리를 내리던 그 해

파랗던 열매는 노릇해지기 전에/ 하나씩 오그라들었고

마을행사로 치러진/ 폭낭 이식이 있고 난 후/ 아이들은 달리 말리는 어른이 없어도/ 더 이상 나무에 오르지 않았지

폭낭 아래/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고사목이 될 거라 했는데

해를 넘길 즈음엔/ 다 여물지 못한 열매 사이에서 단맛 내는 녀석도 있었네

그때/ 어른들은 오가며 살폈는지 몰라/ 뿌리 잘리고 끙끙대던 신음소리를/ 살아보려고 한 잎 두 잎 떨구며/ 바둥대던 몸짓을...

지금/ 그 폭낭 아래/ 쉼팡 삼은/ 베트남 총각 폭-낭/ 삶도 이름처럼 나무를 닮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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