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76)

우리 제주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5.16도로의 숲터널을 가장 먼저 말하고 싶다. 숲터널은 5.16도로를 따라 서귀포 방향에서 제주시 방향 쪽으로 가는 중, 논고교 다리에서부터 약 1.9km 간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수교 다리 직전까지 약 1.2km의 거리로써, 도로 좌우의 나무들이 도로 위로 가지를 뻗어 도로를 거의 덮음으로 인하여 숲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형성된 곳을 말한다.

숲터널 구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이 편평한 구간에 숲의 나뭇가지들이 도로를 덮은 숲길을 6~7회 정도 휘어져 달린다. 이 길을 달리노라면 4계절의 숲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봄이면 앙상했던 가지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모이고, 여름이면 신록이 짙푸르게 우거지고, 가을이면 빨강, 주황, 노랑으로 단풍이 물들고, 겨울이면 나뭇가지와 숲속에 하얗게 눈이 쌓여서 4계절의 꿈을 활짝 펼치는 길이다.

오름 이야기를 하면서 웬 숲터널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오름인 동수악이 바로 5.16도로 숲터널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숲터널 옆에 자리하고 있는 동수악은 남원읍 한남리 지경으로, 남쪽은 이 오름 바로 남쪽을 흐르고 있는 서중천 지류를 경계로 위미리 지경이며, 숲터널을 경계로 서쪽편은 신례리 지경이 된다.

서귀포 쪽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가다 보면 숲터널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쪽 앞으로 오름의 모습이 보이며, 제주시 방향에서 서귀포 쪽으로 올 때는 성판악 주차장을 지나서 내려오는 길에 앞쪽에 오름의 모습이 보인다.

동수악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동수악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수악(水岳)’이라는 이름이 물과 관련 있음에 따라 이 오름에는 산정호수가 있고, 산정호수에는 물이 고여있음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오름을동수악(東水岳)’이라 부르고 있는 까닭은 어디를 기준으로 하여 동쪽에 있는 수악이라고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 오름의 남남서쪽으로 직선거리 4.4km 지점에는 수악이 있고, 또한 북쪽 직선거리 2.4km 지점의 성판악 주차장 맞은편에는 물오름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동수악에는 물이 고여있는 산정호수가 있는 반면, 수악과 물오름에는 물과 관련있는 이름을 붙이고 있음에도 물이 고여있는 곳이 전혀 없을뿐더러, 인근에도 물 웅덩이조차 없음은 특이한 일이다.

이 오름은 동수악이라는 이름 외에도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으로 유수악(有水岳)’이라고도 부른다.

동수악은 세 개의 봉우리와 그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낮은 굼부리에 산정호수를 가지고 있는 오름으로, 봉우리는 북쪽에 동서로 하나씩, 그리고 남쪽에 하나가 있으며, 세 봉우리 중 북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가장 높은 정상부이다.

동수악 산정호수(사진=한천민 소장)
동수악 산정호수(사진=한천민 소장)
동수악에서 바라본 성널오름(사진=한천민 소장)
동수악에서 바라본 성널오름(사진=한천민 소장)

세 개의 봉우리는 산정호수를 둘러싼 능선으로 이어져 있고 봉우리와 능선 위에서 산정호수로 내려가는 경사면은 매우 완만하다, 그러나 오름 바깥 사면은 한 쪽을 제외하면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봉우리에서 서중천 지류가 흐르는 서쪽 경사면과 남쪽 경사면은 매우 가파른데, 시내와 남쪽 봉우리의 거리는 짧지만 높이는 80m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아서 가장 가파른 면은 수직 절벽에 가까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 경사면과 북쪽 경사면도 다소 가파른 지형을 형성하고 있으나, 북서쪽의 숲터널과 이어진 경사면은 매우 완만한 편이다.

산정호수는 깊지는 않는 편이어서 비가 많이 오지 않을 때는 축축한 습지를 만들어 물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다가,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물이 고여서 호수를 형성하고, 이 호수의 물은 서쪽의 낮은 방향으로 흘러서 서중천 지류로 내려간다. 산정호수에서 서중천 지류 방향으로는 낮은 지형으로 인하여 호수에 고였던 물이 작은 개울을 만들어 흘러내가버려서 호수에는 많은 물이 고이지 않곤 하지만, 만약에 그 방향의 지형이 조금만 더 높아도 동수악의 산정호수는 물찻오름이나 사라오름, 물영아리 등과 같이 항상 물이 고여있는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 것이다.

오름 서쪽의 논고오름 쪽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서중천 지류는 5.16도로 숲터널 아래를 지날 때까지는 완만한 흐름을 이어오다가 동수악 서쪽편에 이르러 남쪽 방향으로 꺾어내려 흐르기 시작할 때부터는 매우 깊은 계곡을 만들어 흐르고, 동수악 남쪽을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완만한 시내를 만들어 흘러 내려간다.

서귀포신문사를 통해 사전에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부터 탐방 허가를 받고 취재팀은 한라산 성판악 탐방 관리사무소에 들러 신고를 하고 입산 허가 표지를 받아 배낭에 묶고 다시 숲터널 쪽으로 내려왔다.

동수악 서쪽 기슭의 오름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의 숲터널에서부터 숲속으로 내려서서 오름으로 진입한 취재팀은 금세 오름 서쪽 기슭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숲터널이라는 이름만큼 이 일대는 단풍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사람주나무, 굴거리나무 등 각종 나무들과 아름드리 굵기를 자랑하는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짙은 숲을 형성하고 있었고, 숲이 짙은 만큼 숲 아래에는 길을 가로막는 덤불들과 덩굴들은 거의 자라지 않고 있어서 오름을 향해 걸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름으로 올라서는 서쪽 경사면에는 제주 조리대가 매우 무성하게 번져있었으며, 남서사면과 남사면은 서중천 지류 쪽으로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서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였다. 산정호수에서 서중천 지류로 이어지는 작은 개울을 건너서 남쪽 봉우리로 올라서자 남쪽 봉우리에는 이동통신 안테나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서 사방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사람주나무, 비자나무, 정금나무 등이 큰 바위들과 어우러져 자라고 있었다.

남쪽 봉우리를 지나 동쪽 능선을 따라 북동쪽 봉우리로 향하다가 능선 중간 지점에서 산정호수로 내려갔다. 산정호수에는 현재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풀을 헤치고 걸어들어가니 약간 질퍽질퍽한 느낌이 들어서 습지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호수는 우거진 숲에 둘러싸여 있었고, 넓은 습지에는 고랭이 등 물을 좋아하는 친 수생 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으며, 호수 중간과 기슭에는 솔비나무 등 몇 종류의 나무가 서 있었다.

호수 동쪽 기슭에서 한라산 쪽을 바라보니 호수 너머로 한라산 정상부가 바라보였으나, 이날은 한라산 쪽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산정호수에서 다시 올라와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데 산담을 두른 묘가 보였다. 묘비에 이 오름이 이름을 뭐라고 썼는지 살펴보기 위해 가봤더니 이미 이장을 해버려서 묘가 페헤쳐진 상태였고, 묘비도 없이 산담만 남아 있었다.

북동쪽 봉우리 정상부에 올라섰다. 다른 봉우리에서는 사방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이곳에서는 동쪽 전망이 나뭇가지 사이로 약간 바라보였는데, 물찻오름, 궤펜이오름, 마흔이오름, 마흔이옆, 붉은오름, 구두리오름 들이 바라보였다.

또한 정상부 주변에 쓰러져서 자라고 있는 가지가 굵은 나무 위에 올라서자 북쪽으로는 물오름과 그 아래쪽의 5.16도로가 보였고, 북서쪽으로는 성널오름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모습이 시원하게 올려다보였다.

다시 북서쪽 봉우리를 지나 산정호수로 내려와서는 산정호수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북서쪽의 부드러운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 숲터널로 나왔다. 막 숲터널로 올라서는데, 차를 운전하고 가던 한 지인이 배낭을 메고 숲터널로 올라서는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위치 :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지경

굼부리 형태 : 원형(산정호수)

해발높이 700m, 자체높이 100m, 둘레 1,866m, 면적 25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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