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도서관, 나무와 숲 (37)] 난산리 동백나무 보호수 무리
9월도 막바지, 가을이 완연하다. 들녘에 간혹 귤을 수확하는 손길이 보인다. 살아 있는 것들이 새로운 색깔로 갈아입는 시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순에 성산읍 난산리를 찾았는데, 두 달 보름 만에 다시 찾았다. 난산리 앞동산 부근에 동백나무 노거수로 둘러싸인 멋스러운 집터가 있기 때문이다.
난산리는 경주김씨와 군위오씨 두 집안이 주민 다수를 이루는 마을이다. 연주현씨 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다른 성씨를 찾아보기 어렵다. 앞동산 부근은 경주김씨 집안이 주로 사는 동네다. 인근 여자 삼촌의 말씀대로라면, 예전에는 한 할아버지가 주변에 모든 땅과 집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들 손자로 내려오면서 땅과 집터를 나눠 가졌다.
동백나무 노거수가 있는 곳도 경주김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집터였다. 그런데 이곳에 초가를 지어 살던 주인이 장남에게 물려줬는데, 장남이 경상도에서 군인생활을 하려고 고향을 뜨자 빈집이 됐다. 자녀들도 경상도에서 생활하므로 집은 오래도록 방치됐고, 결국은 허물어져 철거됐다. 집이 철거된 이후 귤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동생이 관리 한다.
입구에, 오래된 머쿠실나무가 넓게 그늘을 드리운다. 예전 사람들은 머쿠실나무를 딸 시집밑천으로 심었다. 딸이 태어날 때 마당 구석에 심어놓으면 딸이 시집갈 무렵에는 큰 나무가 된다. 나무가 그만큼 성장속도가 빠른데다 재질이 부드러워 가공하기 쉽다. 머쿠실나무를 재료료 궤를 만들어 혼수로 보냈다. 수령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50년은 족이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머쿠실나무 그늘을 지날 때 서늘한 바람기운이 느껴졌다.
이집 올레는 에스(S) 자 형으로 제주도에서는 집으로 들어가는 전통적인 진입로 형태다. 이런 올레라야 강한 바람도 막아주고, 들어오는 사람도 마음가짐을 바로잡는다. 좁은 올레 안으로 들어오면 귤밭이 넓게 펼쳐지는데, 예전에 대지였던 곳이다. 북쪽으로 동백나무 군락이 바람을 막고 남으로는 햇살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곳에는 동백나무 노거수만 다섯 그루가 보인다. 나무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가지를 곧추세웠는데, 게 중에는 가지가 부러진 것들도 있다.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됐다는 내용으로 안내판 세 기가 세워졌는데, 다섯 그루 가운데 보호수 세 그루가 어느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수령은 당시 150년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200년 가까운 나무들이다.
동백나무 잎은 연중 짙은 초록을 과시하는데, 초록빛 동백나무 너머로 푸른 하늘이 열리고 뭉게구름이 펼쳐진다. 동백나무 아래는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
동백나무 가지에는 동백나무 열매가 벌어진 채 씨를 붙들고 있다. 조금 지나 힘에 부치면 붙들고 있는 씨앗을 내려놓을 것이다. 이미 떨어진 동백나무 껍질과 씨는 땅 위에 널려 있다.
열매와 씨를 떨어뜨린 가지 끝에는 작은 꽃봉오리가 맺기 시작했다. 이게 가으내 크고, 겨울이 오면 붉은 꽃을 피울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이 움츠리고 소심해지는 계절에, 동백꽃은 홀로 화려함을 자랑할 거다.
이곳을 나오는데, 목소리 큰 경상도 사투리 아주머니 둘이 마대자루를 들고 동백 씨를 주우러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삼촌 말씀으로는, 마을 젊은이들이 대부분 나가 살고 들어오는 건 외지인이라고 했다. 빈집들도 대부분 외지인 차지가 됐다고. 동백나무가 있는 곳이 좋은 집터로 보인다고 했더니 “좋으면 뭐 할 거냐?”라며 “사람이 살아야 좋은 터지”라고 했다.
오는 길에 10월 9일 난산리 주민 단합대회가 열린다는 걸 홍보하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즐겁고 행복한 행사가 될 것이다. 높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넓게 드리운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