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잇다름, 2021)

책의 표지(사진=인터파크)
책의 표지(사진=인터파크)

내 주위에는 제주토박이 친구들보다 육지에서 한달살이로 혹은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 이주한 친구들이 많아졌다.

내 주변에서 보게 되는 제주도 한달살이를 위해 오는 이주민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서울에서 퇴직 후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워밍업을 하러 오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몸의 것이든 마음의 것이든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오는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아이 교육을 위해 이주하러 오는 경우로 나뉠 수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번째의 경우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꼬이고 나이를 꽤 먹었음에도 이룬 게 없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밀려오자, 모은 돈으로 한 달 동안 마음껏 우울을 껴안기 위해 성산포에 상륙했다.

책은 제주도 한달살기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작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오늘날에 자신의 모습까지 솔직 담백하게 얘기한다.

“코로나가 자꾸 내게서 계획을 앗아가고 그 대가로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 뭘 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답은 시간이 많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지만 잠자는 시간은 점점 줄었다. 원래 있던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 대부분을 울면서 보냈다. 하늘이 예 뼈서 울었고, 길거리를 걷다가도 울었다.” P-22 중에서

나는 저자와는 반대로 육지에서 취업도 공부도 안되고 자존감마저 낮아져 있던 그때, 우울한 감정을 겪은 적이 있다. 저자처럼 집에 박혀 1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1문제 차이로 탈락하자 정신과 육체는 방전됐다. 몇 월 몇 일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며칠을 방에 처박혀 지냈다.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을 때, 그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고향 친구가 없었다면 우울한 감정이 오래도록 나를 좀 먹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책을 읽을수록 저자가 껴안은 우울의 무게가 제주의 와서는 가벼워졌는지에 궁금해졌다.

그런데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단순히 제주도에 와서 우울증이 치료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이 있는 내용은 없다.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과 우울함을 그저 이겨내라는 상투적인 말도 나와 있지 않다. 저자는 우울을 겪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길이 보인다는 걸 이야기한다.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다짐을 한다. 남들과 같이 살지 않겠다고. 남들의 시선 속에서 살지 않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도 살지 않겠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대로 살아보자고. 물론 몇 걸음 못 내딛는 작은 이 섬에서 많이 외롭겠지만 말이다.” P-180 섬 중에서

나는 우울한 감정을 마주 보고 직시할 용기가 없었기에 폐쇄적인 섬 고향 제주로 돌아와서도 이 우울이라는 감정에 나의 시간과 감정을 빼앗겼기에 우울을 외면하려고 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우울한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마주 보며 자신의 우울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글을 써내려갔다. 책을 읽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나보다 일찍 우울이라는 감정을 마주 보려 노력한 대가가 아니었을지, 이제는 제주라는 섬에서 나의 우울이라는 감정을 나 스스로 직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생각해 잠긴다.

마치 우울하고 예민한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처럼/정하/잇다름/240쪽/1만6천700원/2021년 09월 20일 출간

작성자: 허지선(사서 출신의 시민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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