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44]
탐라합창제가 1990년 첫 대회를 개최한 이래 벌써 서른두 번째를 맞았다. 첫 대회 대상팀인 제주대학교 칼리오페 합창단은 그해 부산에서 개최된 전국 합창경연대회에서 전체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 순수 일반 합창 축제인 탐라합창제는 계속하여 경연 형식으로 운영되면서 선한 경쟁심을 일으키며 제주 일반 합창 발전에 크게 기여 해오고 있다.
초창기에는 직장부, 읍면동부, 일반부, 중창부, 학생부 등으로 분리, 많게는 약 50여 팀이 출전할 정도로 참가 팀이 많았지만, 현재는 많이 줄어 일반부, 중창부, 학생부만 경연을 치르는 형편이다. 다소 아쉬움이 있는 대목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매 대회를 치를 때마다 결과에 대한 잡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심사평에서 ‘어려운 리듬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게 틀렸으니 이건 올바른 연주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심사평을 듣고 제주의 합창인으로서 모멸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또한 어떤 합창단은 ‘집행부의 일관성 없고 비합리적인 진행 때문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겠다’는걸 ‘제주 합창 발전을 위해 꼭 참가를 부탁드린다’라고 설득하여 겨우 참가시킨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예산 부족이나 최근 코로나와 같은 다양한 원인 들이 겹쳐 현재 탐라합창제가 과거의 명성을 잇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는 학생부, 일반부 12팀, 중창부 6팀이 출전하였다. 일반부 경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며 느낀 것 중 가장 긍정적인 것은 소리의 질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기량이 예전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성악을 전공한 젊은 층이 합창 활동에 다수 참여하며 생긴 현상인 것 같다.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다. 개인의 좋은 기량이 바탕이 되어야 질 좋은 합창 소리를 만들 수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두 번째는 20대 젊은 층부터 6~70대까지 참가 연령층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의 합창 열풍은 대단하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관심군들이 모여 합창 활동을 하는 모습이 이젠 일상이 된 것 같다. 제주 합창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증거이다.
세 번째는 예년과 다른 포상 규모이다. 이번 전체 대상팀에게는 해외 연주의 특전이 주어졌다. 단순히 해외에 연주 한 번 갔다 오는 게 아니라 세계 합창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기회를 전체 대상팀을 통해 제주도민에게 주는 것이다. 제주 합창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면 이외에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일부 지휘자들은 합창음악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한 듯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참가팀들 중에는 소리의 질, 다시 말해 개인 기량이 좋은 합창단(중창단 포함)이 꽤 있었다. 그리고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합창단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각 파트별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멜로디를 부르는 소프라노 파트에 너무 집중된 나머지 다른 파트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필자의 예상대로 심사위원들도 그 점을 무겁게 보았는지 그 합창단(중창단 포함)들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또한 어떤 팀은 두 곡의 연주곡 중 한 곡과 다른 한 곡과의 연주력 격차가 너무 커 안타깝기도 했다. 필자가 보기엔 충분히 소화할 능력이 있어 보였지만 후반부에서 정교함이 무너지는 모습이 아쉬웠다. 가진 역량을 다 펼치지 못한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 탐라합창제는 전통적으로 지휘자는 중복 출연이 허용되지 않으나 단원은 중복 출연을 허용해왔다. 두 개 이상의 합창단 활동을 하는 단원을 배려한 전통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경연에는 다수의 단원이 같은 팀에 중복 출연하는, 취지와는 다소 맞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자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중창과 합창의 구분이 애매했다는 것이다. 거의 20명에 달하는 단원 수와 지휘자가 앞에서 지휘하는 팀이 굳이 중창팀으로 출전했다는 점에서 합창과 중창의 출연 규정을 사회적 통념에 맞게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탐라합창제는 제주 합창 발전의 역사이면서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합창제의 대상팀에게 해외 연주 특전을 줄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한 집행부의 능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며 일회성으로 그쳐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각 합창단에서 제주 합창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지휘자, 반주자, 단원들의 노고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번 탐라합창제를 관람하면서 제주의 합창음악이 바야흐로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처럼. (물론 요즘은 프로들도 제한적으로 출전이 허용되지만) 이제 일반 합창단들도 전문 합창 음악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의 시대가 제주에도 열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요한 것은 이에 맞게 지휘자들 또한 합창 지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한 음악적인 지식으로는 이 훌륭한 단원들의 합창 음악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지휘자는 단원들을 무대 위의 영웅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탐라합창제는 제주도민들의 합창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고 제주 일반합창 발전을 위한 주춧돌이며 중요한 교두보이다. 그러기에 제주도는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여 더 많은 도민이 합창음악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제주에도 전국적인, 더 나아가 세계적인 일반 합창단이 출현할 날을 제주 합창 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